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봄 Jul 31. 2023

내 고향 칠월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흥건히 적시며 흘러내렸다. 뼈마디는 온통 욱신거렸고 이마는 펄펄 끓고 있었다. 어디 하나라도 멀쩡한 곳이 없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작은 바람에도 오한으로 떨었다. 뒤죽박죽 얽히고설킨 몸뚱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정도껏을 벗어난 탈이었다. 앙다문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질끈 감은 눈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흉측했다. 욕심이란 건 끝을 몰라서 중간에 멈출 줄을 몰랐다. 이제 그만하자. 말류하고 탈이 날지도 모른다 경고도 했지만 본체만체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고 있었다.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 자기도 모르게 끙끙 앓고 말았다.

불볕 더위니, 가마솥 더위니 연신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이 정도쯤이야 어디 명함도 내밀 수가 없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더위는 이미 체온을 지나쳐 사십여 도를 넘었다고도 했고, 그보다 한 마디를 더해 오십 도를 넘어선 곳도 있다고 했다. 대형산불이 숲을 태우고 폭풍우가 대지를 휩쓸었다고도 했다. 타는 목마름과 홍수가 동시에 덮쳤다. 정신을 차릴 시간도 없이 얼얼하게 뺨을 얻어맞은 꼴이다. 인명이 상하고 재산이야 말할 것도 없다. 신음하는 지구이고, 몸살을 앓는 지구였다.

풋사과 한 알에 너무 많은 알이 부화했다. 오글오글 모여 너무 많은 과즙을 빨았고 과육을 갉아먹었다. 포동포동 살이 오른 애벌레는 몸집을 키울수록 더욱 게걸스럽게 사과를 갉아먹었다. 욕심은 끝이 없었다. 몸살을 앓는 사과는 결국 여물지 못했다. 빨갛게 익어갈 가을은 멀었고 오글오글 달려든 애벌레는 너무 많았다. 번데기가 되지 못한 애벌레들이 사과 껍질을 뚫고 기어 나왔지만 그들을 반기는 건 없다. 불볕더위와 폭풍우가 인사를 건넨다.

잔뜩 화가 난 바람이 불었다.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바람은 들끓는 햇살과 다르지 않았다. 잔뜩 독이 오른 독사처럼 뜨거운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사나운 시간이다. 희뿌옇게 하늘을 가린 구름은 한낮의 열기를 가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역사를 둘러싸고 어지럽게 여름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 옛날 시인은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알알이 여물고 주저리주저리 말이 꽃을 피우는 계절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시인의 고향만 그랬을까. 저녁 밥상을 물리면 마당 귀퉁이에 모깃불을 피워놓고서 삶은 옥수수 하나 손에 들고서 별을 헤아리곤 했다. 달려드는 모기와 나방 같은 날것들이 귀찮을 만도 했지만, 우수수 바람으로 떨어지는 별들이 더 좋았다. 평상에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은 소금 한 줌 흩뿌려놓은 듯 별이 가득했다. 타닥타닥 모깃불이 타고 삼단 같은 머리 풀어헤친 듯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았다. 알알이 청포도가 여물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형제들은 까르르 호박꽃 같은 말들을 피워냈다. 내 고향 칠월은 그랬었다.

에어컨 실외기가 잠들지 못하고 웅웅웅 돌고 거나하게 취한 취객이 골목을 깨우고 지나갔다. 들짐승처럼 거친 욕설도 한 됫박 쏟아냈다. 휘청대는 그의 여름도 주저리주저리 말꽃이 피기엔 너무 뜨거웠다. 가슴에 불덩이 하나가 타고 있었고 식지 못한 바람이 연신 부채질을 해대고 있었다.

훗날 시인은 오늘을 어떻게 노래할까 궁금했다. 혹여라도 내 고향 칠월은 에어컨 실외기가 밤새 잠들지 못하고, 찐득한 아스팔트가 거미처럼 들러붙는 계절이다'라고 노래하지 않았으면 했다. 웅얼웅얼 옹알이처럼 곱씹을 시라면 곱고 예뻤으면 좋겠다. 열병처럼 뜨거운 칠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바람은 후끈하고 정수리 위 햇살은 이글이글 징그럽다. 칠월의 마지막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재미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