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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ul 26. 2023

하필이면...

노숙인의 손끝에서 빵 부스러기가 뿌려졌고 그와 동시에 수십의 비둘기가 폭격기처럼 날아들었다. 날개 퍼덕이며 내려앉는 게 아니었다. 그 모습은 흡사 전장에 투입된 폭격처럼 잔뜩 폭탄을 매달고서 지상으로 내려 꽂히는 것만 같았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감행하는 무모한 비행이었다. 굶주림은 앞뒤 잴 것도 없는 무모함을 부르고 부나방처럼 불구덩이로 뛰어들게 했다.

평화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우는 때도 있었다. 너 나 할 것도 없이 지방의 소규모 지자체까지도 우후죽순 비둘기를 사육했다. 조그만 공원을 조성해도 어김없이 비둘기집을 짓고 금이야 옥이야 비둘기들을 모셨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고 했다던가. 비둘기가 그 짝이었다. 먹고사는 고단함에서 벗어난 비둘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랑을 나눴고 그만큼 비둘기가 늘었다. 귀함이 사라지면 천덕꾸러기로 변하는 게 인지상정일까. 뒤룩뒤룩 살찐 비둘기가 공원을 뒤뚱거리자 돼둘기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온갖 비난의 말과 확인되지 않은 혐오가 터져 나왔다. 병을 옮긴다고 했다. 문화재나 중요 건축물을 오염시켜 유지관리에 고충이 가중된다고 헐뜯기도 했다. 비둘기의 추락이었더. 유해조수의 명단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을 때, 비둘기에게 더는 먹이를 주지 말라고 했다. 청야전술이다. 집이며 식량이며 모두 불태우며 퇴각하는 아사작전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빵부스러기에 달려드는 비둘기는 전장에 투입된 병사처럼 아등바등 처절했다. 신경질적인 바람이 일었다. 험상궂게 떼로 몰려들었다.  비둘기는 처음부터 오늘까지 그저 날개 퍼덕이는 새였고, 비둘기였다. 평화를 노래한 적도 없었고, 공원 한 자락을 내어달라 입을 뗀 적도 없었다. 하필이면 그들이 비둘기였을 뿐이다.

후닥닥 툭탁 소낙비가 몰려갔다. 빌딩의 꼭대기에 얌전히 매달렸던 구름이 사납게 달려들었다. 느긋하게 공원을 가로지르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소낙비에 혼비백산 놀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날씨였다. 오리무중 길이 끊기면 품었던 빗방울을 쏟아내었다.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이라서 그렇다. 그렇게 바람으로 모였다가 투닥투닥 흩어지는 거였다. 대거리를 할 수도 없다. 하필이면 모였다 흩어지는 그곳에 내가 있었을 뿐이다. 예정된 무엇이 아니었으니 어그러졌다 투정을 부릴 수도 없다.

마음이 담긴 무엇이 아니라서 그렇다. 거꾸로 온마음을 더해도 그저 한낱 구름처럼 덧없는 게 천지간에 가득하다. 생각과 정성이 부족해서 마음을 담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설명할 수 없거나 불가항력인 것들을 상대로 돈키호테가 된 내가 있어서 그렇다. 풍차에 달려드는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의 녹슨 창으로 꿰뚫을 수 있는 거인은 어차피 존재하지도 않았다. 하필이면 로시난테의 걸음이 그곳에 닿았을 뿐이다. 어쩌면 늘 배가 고픈 로시난테의 콧구멍에 푹 삶은 콩비린내가 났는지도 모른다. 콩냄새에 이끌린 로시난테는 돈키호테의 마음과는 달리 풍차가 돌고 여물냄새가 구수한 길을 뚜벅뚜벅 걸었을 뿐이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그곳에 있었다는 거, 그게 풍차와 일전을 벌인 이유의 전부다.

하필이면 나는 나로 태어나 목전에 펼쳐진 길을 걸었을 뿐이다. 마음이 없고 뜻이 없었을까. 생각이 없고 실천이 없었을까. 노을이 지고, 노을처럼 저무는 내가 비루먹은 로시난테의 고삐를 쥐었을 뿐이다. 기사도를 발휘해 공주님을 지키는 꿈도, 어여쁜 숙녀를 위해 세레나데를 부르는 것도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이었다. 소낙비 퍼붓는 그곳에 하필이면 그 시간에 거기를 걷는 것처럼 후닥닥 툭탁 사는 게 시끄럽고 어렵다. 하필이면 말이다. 마음에 바람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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