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허위 뙤약볕을 걸어 여동생네를 다녀왔다. 오가는 길은 노래 두 곡쯤을 들으면 되는 길이니 멀지는 않다. 식당을 찾아 나선다고 해도 늘 들락거리는 단골집이 아니라면 그보다는 먼 길을 헤맬지도 모른다. 그 짧은 거리를 오가는 것에 불과했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허위허위 걸었다고 표현하는 게 옳겠다 싶었다. 작렬하는 태양과 그와 조우하려는 대지의 열기가 더해져 비록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거였지만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그렇다.
그렇게 찾아가 먹은 점심 상차림은 비빔면이다. 그것도 뚝딱뚝딱 오이를 썰고 갖은 고명을 준비한 수제 비빔면이 아니고, 말 그대로 초간단 인스턴트 비빔면이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라면의 한 변종인 거다. 너무 부실하다거나 너무 성의가 없다는 타박의 말을 꺼내려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의 예찬론을 입에 올린다는 게 맞겠다. 맛있게 먹었으면 훌륭한 요리다. 아무리 정성을 쏟고 좋은 재료를 엄선했다고 해도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라면만도 못한 거다. 음식이라고 하는 게 다 먹자고 시간과 돈을 할애하는 것인데, 떨떠름 벌레씹은 표정으로 상을 물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관상용은 의미도 없고 취미도 없다. 음식의 기본은 맛이다. 만한전석 산해진미도 맛이 없다면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다. 거꾸로 비닐봉지 부스럭대는 인스턴트 음식이라고 해도 맛이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거다. 몸에 좋고 나쁘고는 그다음 얘기이기도 하다. 애초에 약이다 생각하고 먹자고 하면 약을 복용하는 차라리 더 낫다.
인스턴트 비빔면이라고는 해도 약간의 정성을 더하면 그 맛은 배가 된다. 매콤 달콤한 비빔면의 양념장과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듯 궁합이 들어맞는 식재료가 있게 마련인데, 개인적으로 얇게 채를 치듯 저민 양파가 좋다.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과 더불어 알싸하고 달큼한 양파의 맛이 풍미를 더한다. 그렇게 몇백 원의 일품요리를 배부르게 즐겼다. 말 그대로 몇백 원의 행복이다.
고양이 앞에 쥐처럼 여름이면 여지없이 입맛이 달아난다. 밥은 모래알을 씹는 듯 깔끄럽고 좀처럼 목구멍으로 넘기기도 힘들다. 식은 밥 한 덩이 찬물에 훌훌 말아 물 마시듯 넘기는 밥은 그나마 양반이다. 오이냉국에다 미역냉국, 고추장냉국까지 종류별로 냉국을 끼고 산다. 가뜩이나 비루먹은 말처럼 갈비뼈가 불거진 처지였지만, 여름 한 철을 나고 나면, 그나마 전에는 보기 좋은 거였구나 입을 모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여름은 힘겨운 계절이었다.
밥이 모래알로 변이를 하면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내려놓게 된다. 나 닮은 비쩍 마른 젓가락 한 쌍에 의지해 길고 지루한 장마를 건너고, 폭염이 대단한 복더위를 비껴냈다. 바야흐로 면의 시간이다. 후루룩 후룩 마시듯 먹는 면음식은 달아난 입맛 속에서도 식욕을 부추기고, 등가죽과 조우하려는 뱃가죽을 떨어뜨려 놓는 일등공신이었다. 그들은 원래 만나서는 안 되는 사이였으므로 생이별의 애잔한 마음도 필요 없었다. 가까워 좋을 게 일도 없는 사이였다.
묵사발 한 사발과 식은 밥 한 덩이, 매콤 비빔면, 김치말이 국수, 시원한 물냉면,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맑은 콩국수까지 한 여름을 무사히 건네주는 소중한 것들이다. 면음식이 없다면 어떻게 여름을 보낼 수 있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숟가락을 놓는다는 건 목숨줄을 내려놓는 거라는데, 그나마 젓가락이라도 동아줄처럼 꼭 움켜쥐고 있으니 천만다행이랄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밥그릇은 점점 더 밀쳐내게 되고, 건강에 좋지 않다는 밀가루 면음식은 가까이 두게 된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다만, 당뇨병을 앓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면음식을 멀리하게 된다. 젓가락보다는 숟가락과 친해진 몇 해 여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여름 인간적으로 면음식을 아예 모른 척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