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의 3초의 기억, 이성을 판단하는 3초간의 스캔, 못해도 삼세 번의 선택. 나는 뒹굴뒹굴 뒹굴, 또르르 먹물 세 방울을 따르고 쓸데없는 생각 끄적이며 하루가 간다
입술이 뜯겨나간 붕어가 동그란 눈을 껌뻑거리며 황급히 도망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붕어는 낚싯바늘에 입술이 꿰여 발버둥 치다가 입술이 뜯겨나가는 바람에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꼬리지느러미에 온 힘을 모아 파닥거렸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낚싯줄은 어찌나 질기던지 낚싯줄을 끊고 달아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는 거구나! 눈앞이 캄캄하고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려는 찰나에 기적적으로 입술이 뜯겨나갔다. 엄청난 고통이 파고들었다. 뼈마디가 으깨지고 세포 하나하나에 바늘이 꽂히는 거 같은 고통이 파고들었다. 고통이 어찌나 극심했던지 자면서도 감지 않는다던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붕어가 피를 철철 흘리며 달아나던 참이었다.
"어이, 이보시게 큰 덩치?"
달아나던 붕어를 불러 세운 건 반짝이는 은빛 비늘을 가진 피라미였다.
"어.... 무슨 일인가? 작은 덩치?"
피를 흘리며 도망치던 와중에도 팔랑귀는 어쩔 수 없었는지 헤엄치기를 멈추고 말을 받은 붕어였다.
"어딜 그렇게 바삐 가는가? 어디 맛있는 지렁이가 집단으로 투신이라도 했다던가? 이런.... 철철 흘리는 그 피는 또 뭐고?"
"아, 그게 말일세...."
그렇게 말을 받은 붕어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무슨 대답부터 해야 하지? 생각을 하다 말고는 머리를 갸웃했다. 뭐였지? 뭐였더라? 어디를 가는 중이었는지? 그보다도 왜 입술이 찢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 그게 말이지.... 아, 근데 작은 덩치? 자네는 무슨 일인가?"
마주 보고 있던 피라미란 녀석도 뻘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꼬리지느러미를 살랑살랑 흔들어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큰 덩치 붕어도 왜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면서 꼬리를 흔들어 자리를 떴다.
드르륵 카페의 자동문이 열리고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여인이 걸어 들어왔다. 하늘거리는 원피스는 무릎 바로 위에서 멈춰 한껏 얌전해 보였다. 얌전하다는 건 보통 이상으로 예쁜 얼굴과 그 얼굴에 어울리는 몸매를 갖고 있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더해 남자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끄는 성적 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수수하고, 착한 순애보를 간직했으면 하는 남자의 열망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했다. 방금 카페로 들어선 여인을 바라보며 남자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단숨에 훑어내리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찰나의 스캔으로 완성된 시각적 정보에다가 학습을 통해 얻은 경험치를 열심히 대입해 보는 데에 또 그만큼의 시간을 할애했다. 하얀 하이힐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것으로 보아 여자는 분명 조금은 도도하고 까칠한 성격일 테고, 평소 정리정돈에 신경을 쓰는 차가운 도시녀일 게 분명하다고 분석을 마쳤다. 째깍째깍째깍.... 시간은 거기에서 멈췄다. 고작 3초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스캔에서 종합평가를 거치고 완성된 보고서에 결재도장을 찍는데 필요한 시간은 3초면 충분했다. 벌써 붉은 인주가 마르고 있었다. 인주가 바스락 마르는 시간부터 남자는 열병을 앓기도 했고 밤을 지새우며 편지를 쓰느라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고작 3초의 판단으로 평생을 가져다 바치는 중이었다. 분명한 건 사랑이란 건 요사스럽고 괴이한 놈이라는 거였다. 알아서 조아리고 알아서 설설 기었다. 그러면서도 세상 가장 행복한 얼굴로 웃는다는 거였다. 괴이했다.
누구는 복더위에 땀방울 쏟으며 숨을 헐떡거렸고, 누구는 촌각을 다투며 약속시간을 맞추려 바삐 걸음을 옮겼다. 또 누구는 더위를 피해 찾은 피서지에서 함박웃음을 웃느라 손가락이 다 부러지기도 했다. 날마다 주고받던 안부가 사라지고 수취인 불명으로 거리를 떠도는 말들이 늘어난 것을 보면 분명 그런 듯했다. 너무 바빠서 말이 멈추고 가까스로 다다른 말들을 소 닭 보듯 하기 일쑤였다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오물오물
"너무 바쁘고 너무 행복한 시간이라서 너를 잠시 잊었던 거 같아!"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그랬구나.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뭐...."
한풀 누그러진 마음으로 탈출구를 열어놓을 수 있으니 그렇다. 여자를 위한 탈출구라기보다는 순전히 남자 스스로를 위한 탈출구였다.
숱한 우연이 겹쳐져 한 사람의 삶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우연한 만남에 인생 경로가 바뀌고 몇 년을 계획한 일이 우연한 일로 인해 전혀 다른 길로 수정되고 틀어지게 마련이다. 사람의 행동도 그렇다. 철저히 주관적 판단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을 한다지만 그것만큼 큰 오류와 착각이 없다고 한다. 과일가게를 찾은 남자가 빨갛고 동그란, 거기다 광택이 나는 사과를 선택하고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한다고 치자. 과연 그게 그 남자의 순수선택이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뇌과학자들의 최신 연구결과다. 이미 수수만 년 조상들의 경험치에 빗대 뇌는 그런 사과를 선택하게 세팅되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끌리는 무엇은 그게 뭐가 됐든 유전자에 그렇게 설계된 결과라는 얘기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선호도가 나뉘는 건 조합의 배열에 전후좌우의 미세한 차이를 두어 하나를 두고 목숨을 거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배려에 불과하다고 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게 되는 3초의 스캔이 만든 선택에 찢어진 입술로 피를 흘리는 붕어는 그래도 행복할는지 모르겠다. 붕어대가리는 물불 구분 없는 달려듦에도 3초가 전부라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