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봄


벌써 몇 달을 산 집입니다. 봄이 막 시작되는 날에 이사를 했고 여름이 끝나가는 오늘입니다. 두 계절을 보낸 집인데 낯설기도 하고 생각보다 바닥이 미끄러운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화장실의 문턱도 높구나 하게 됩니다. 몸이 불편하지 않다면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네요.

정글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이게도 되네요. 아, 이랬었구나! 처음 알게 된 것들을 숙지하려 메모를 합니다. 매트리스에서 일어날 때는 정면보다는 뒷걸음으로 일어나는 게 한결 편하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주방을 오갈 때나 화장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이라도 안전하고 편한 방법을 찾아 두리번거리게 되네요. 그러니 모험가이기도 하고 어린애이기도 합니다.

모든 게 처음입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듯 구석구석 집을 탐색합니다. 어디가 미끄러운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수월한지? 사용설명서를 새롭게 쓰는 중입니다. 못해도 가을이 끝날 무렵까지는 두문불출 은거해야만 하는 처지라서 그렇습니다. 왼쪽 다리 하나로 버텨야만 하는 시간이 제법 길게 기다리고 있네요.

보름쯤 비워두었던 집에 들어왔을 때 옷장 문고리에 매달린 수건이 마중을 합니다. 뽀송하게 마른 수건입니다. 마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근데 왜 수건이 거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멀쩡한 빨래건조대를 마다하고 수건은 왜 거기에 있었을까요? 허허, 그거 참 알 수가 없네요.

낯설고 처음인 것들 투성이라도 집에 돌아오니 좋네요. 건강하게 두 발로 걸어내려 갈 날을 기다려야겠습니다. 국방부 시계도 돌아갔는데 까짓 목발쯤이야 못 견딜까요. 낙엽 툭툭 떨어지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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