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만의 나비, 날아든다
예정에 있던 일은 사라졌다.
예정에 없던 눈이 내렸으므로
있던 것 사라지고,
없던 것 새로이 생겨났다.
해서, 아무리 잘 짜여진 계획일 지라도
느닷없는 없던 것 하나에
계획은 틀어지고 시간은 어긋나서
모호한 혼돈으로 빠져들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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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확인한 일기예보에는
눈이 내린다는 얘기가 없었다.
내일은 강추위가 온다고 말이 많았고,
저 많은 산을 넘어서야 만나는 동해안
어딘가에는 30여 cm가 넘는 폭설이 예상된다
침을 튀기며 아리따운 기상캐스터가
화면을 가득 채웠었는데,
눈이 내린다.
마른 눈, 부스러기로 내리는 것도 아니다.
골골마다 뜨락마다 가득
함박눈 소담스레, 향기롭게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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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이다.
꽃은 이미 떨어져 먼지가 되었다.
그나마 초록으로 매달려
아직은 겨울이 아니다, 시위라도 하듯
발버둥치던 장미나무 줄기에도
어김없이 눈은 내렸고,
이내 초록을 지워버렸다.
나풀나풀 아니면 허위허위 날개짓을
해야만 하는 이유, 찾아야 할 꽃송이
하나 없는 들에 수 만의 나비가 날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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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눈 하냥 바라보다가
노란 양은냄비에 물을 붙고서
라면 하나 꺼내 라면을 끓였다.
어제 안주로 먹던 번데기도 넣어주고,
새우깡 하나에 소주 한 잔
귀하디 귀하게 먹어주던 새우깡도 한 줌.
참깨가 들어 있어 고소함이 일미라는
참깨라면의 변신은 무죄다.
왜?
함박눈이 어여쁘게 내리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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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던, 예상되지 않았던 눈내리는 휴일에
잡탕찌개 같은 라면을 끓이고서
소주도 한 병 소환을 했다.
시간으로는 오전이고 깨어나지 않은
몸뚱이 임에는 틀림없으나 어떠랴.
함박눈 쏟아지는 골짜기는
아침이 제대로 찾아들지도 못해서 새벽이
이어지듯 어두컴컴 밤과도 같다.
이웃의 철 없는 닭도 목청을 돋워
"꼬끼오 꼬끼오!" 홰를 친다.
잔을 들어 쓴 소주를 부어도 좋겠다 싶은,
이불은 따뜻하고 방은 고요해서
그대 품에서 나는 졸고 있다.
졸다 잠이 들어도 행복할 터다.
오늘,
함박눈이 오시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