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에 가자 약속을 했다

조르바의 걸음을 따라 걸으며 자유롭고 싶었다

by 이봄


어제는 함박눈이 가득 내리더니

오늘은 추위가 매서움을 떨치고 있다.

기온은 곤두박질 쳐서 영하 15도를 찍었다.

혹여라도 까치가 얼어죽었는지

전화 한 통쯤 날려줄만 한 날씨라는 얘기지.

관심이 있다면, 손톱만큼의 미련이

남았다고 하면 그럴 거란 얘기다.

나에 그대가

뉴스의 말미마다 앵무새처럼

철원의 기온이 영하 15도라고 종알종알

수도 없이 반복을 하는데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그대 안녕한가요?"

"춥지는 않아요? 연탄불은 때 맞춰 잘 갈았어요? 춥지 않게 불구멍이라도 좀 열어두고 자요? 알았죠?"

따끈하고 달달하고 포근하고 향기롭게

전화 한 통 걸만도 하겠는데

넌 어쩜 문자도 없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떠오른 약속 하나.

.

.

.

.

크레타에 가자고 약속을 했다.

새끼손가락 걸며 그러자고 했다.

살집이 통통한 마담이 너스레를 떨고

수염 덥수룩한 사내는 취기가 올라

있지도 않은 자랑질로 골목이 시끄럽다는 섬.

소나무 우거진 크레타의 섬에는

취한 사내가 치기롭게 여인을 꼬득이고,

스스로 옷을 갈아입는 유칼립투스나무는

붉거나 노랗거나 아니면

초록의 껍데기로 숲을 채웠다.

늙은 마담의 붉은 입술과

잔을 가득 채운 노란 맥주, 거기에다 하얀 거품

덤으로 올려 그대를 유혹했으면 싶었다.

유유자적 거칠 것 없는 알몸으로

아침을 맞고 노을이 흠뻑 바다에 빠질 때까지

취해서 흥얼거리자고,

너와 나 꼭 그렇게 벌거벗은 자유로

취해 잠들자고 약속을 했다.

약속을 주절이던 나와

흰 파도 오늘도 요란스럽다는

그 섬은 예전 그대로

나의 너와 너의 나를

기다린다고도 하던데

시간은 낡아지고, 공간은 멀어져서

건너지도, 만나지도, 약속을 잇지도 못하는

오늘에 섰다. 덩그랗니 홀로.

날씨는 심술을 덕지덕지 붙이고서 떼를 쓴다.


"춥지? 오늘 같은 날에는 사랑하는 사람 꼭 끌어안고서 뒹굴뒹굴 구들장을 업어줘야 하는 거야!"

지랄을 한다. 나도 안다.

다만, 크레타는 멀고 날은 추울 뿐.

약속은 어느 골목을 떠돌다가 쌓인 눈에

발목을 잡혔는지 나도 궁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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