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을로 걷는다. 구름이 몰려들었고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썰렁한 바람이 불었다. 벚나무 푸른 잎은 단풍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보채거나 다그치지 않아도 계절은 스스로 여물어 깊을 터였다.
화려했던 봄날과 치열했던 여름이 지났고 풀벌레 마저 동면을 준비하려 꼬치를 튼다. 잔뜩 목이 쉰 매미는 무사히 알을 낳았을 테고, 다람쥐는 두 볼이 터지도록 도토리를 물어 나를 터였다. 다음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 오늘이다. 알토란처럼 가을이 여물어야 긴 겨울이 따뜻할 터였고, 온기 머금은 숨 한 줌 기대할 수 있는 거였다.
만물이 분주한 시간에 멀뚱이 앉아 상처를 쓸어내리고야 만다. 죽은 살갗이 뱀의 허물처럼 허옇게 일어나 볼썽사납다. 풍선처럼 부푼 발목에 미열이 돌고 찌르르 감전이라도 된 듯 통증이 스친다. 관절이 굳어 딱딱해진 발목은 나무토막 같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 줌의 우울이 고개를 쳐들고, 그러면 나는 또 그만큼의 슬픔으로 화답을 한다. 우울한 날이다. 해가 뜨거나 비가 내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