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by 이봄


마른 낙엽을 태웠으면 좋겠다. 뉘엿뉘엿 해 질 무렵 하늘은 노을빛 곱게 단장하고 성미 급한 별 몇 개쯤 반짝인다면 더없이 좋겠지. 마당 한편에 불을 지피고 하얗게 풀어헤친 연기 하늘 높이 치솟는 걸 바라봤으면 좋겠다. 말로 형용할 수도 없는 그리운 냄새 코끝을 파고들면 나는 유년의 먼 기억을 불러내어 뛰어놀지도 모르겠다. 어스름 저녁이 내리고 빨갛게 일렁이는 불꽃 꽃으로 필 터다.

이왕이면 들꽃처럼 예쁜 불길 너의 두 눈에 담겼으면 좋겠다. 부지깽이 하나 손에 쥐고서 타닥이는 낙엽 뒤집어가며 도란도란 가을을 얘기하고 싶다. 고개 쳐들어 바라보이는 별들의 전설도 속삭이면 더욱 좋겠지. 너는 맞은편에 앉아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이따금씩 '아, 그랬구나!' 추임새를 보탰으면 좋겠다. 그러면 충분하다.

가을이란 놈은 본디 쓸쓸한 놈이라서 굳이 쓸쓸함을 탓하지도 않겠다. 억지로 거슬러올라 뭔 놈의 팔자가 이렇듯 쓸쓸한지 모르겠다 타박도 않겠다. 싱거운 미소 한 줌 양념으로 뿌려다오. 그런 너 바라보며 마른 낙엽이나 태웠으면 좋겠다. 그러면 되었다. 귀뚜라미도 없는 가을, 바람에 흔들려 꽃송이 피고 홀로 지킨 황혼 쓸쓸해도 나는 행복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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