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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Oct 28. 2023

가로등


어둠이 내렸을 때 모든 것들은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소곤 속삭여야만 했다. 잔잔한 달빛과 얌전한 바람이 서로를 애무했다. 시끄럽고 야단스러운 것들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밤이라서 그렇다. 두 눈 살포시 감고 떠올리게 되는 상상의 설렘은 입가에 스치는 미소와 다르지 않았다. 가슴에 올려놓은 두 손이 콩닥콩닥 떨렸다. 가로등 하나 뽀얗게 등을 밝혔을 때 붉어진 얼굴 밤이 새도록 행복했다.

어둠이 물러나고 하늘이 새파랗게 열렸을 때 뒤섞여 분별할 수 없는 모호함은 사라졌지만 그거에 더해 상상의 보드라움 또한 덩달아 꽁무니를 내뺐다. 기대와 상상... 어둠에 가려진 설렘은 흔적도 없이 부서졌다. 두 눈 벌겋게 부릅뜬 아침, 오히려 가로등 하나 허허로울지도 모르겠다. 가을바람 소슬하니 부는 아침은 옷깃을 여미게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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