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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Nov 07. 2023

바람이 불었다


후둑후둑 낙엽이 지고 가을비 내리더니 봄볕에 졸던 고양이처럼 잦아들었다. 얌전한 골목에 사람들 몇몇 나와 걸음을 재촉했다. 편의점에서 나온 중년의 사내 손에는 라면 몇 봉지와 소주 한 병이 들려있었고, 미용실로 모습을 감춘 여인네는 얼마나 더 예뻐질까 기대하는 마음에 발그레 얼굴을 붉혔다.

내리던 비가 잠깐 주춤거렸을 때의 풍경이었다.

광풍이 불었다. 다시 비가 내렸다. 몇몇 골목을 메웠던 사람들 화들짝 놀라 꽁무니를 내뺐다. 주섬주섬 펼쳐든 우산이 단풍처럼 노랗고 빨갛다. 가을이 곱게 물들었을 때 잔뜩 골이 났을까. 돌풍이 불어 우산을 꺾어놓았다. 우악스러운 바람이 손목을 비틀었다. 뭘 모르는 억새만 허리가 부러져라 춤을 추었다. 요란하던 가을비 주춤거리면 틈바구니 파고든 바람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난장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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