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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Nov 08. 2023

노래


북쪽으로 난 골짜기마다 먼 길을 달려온 바람들이 모여 웅성거렸다. 남쪽에서 올라온 훈풍은 짐을 싸기에 바빴다.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마지막 초록을 자랑하던 텃밭의 무 배추를 뽑아 소금에 절궜다. 한 계절 밥상을 책임질 김장을 담그고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 것으로 가을은 먼 길을 떠나야만 했다.

늦가을 잦은 비가 내렸다. 반짝 햇살이 내리다가 다시 비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겨우 가지에 매달렸던 이파리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더니 계절의 눈치싸움에 가슴이 아렸다. 잠시 비 그쳤을 때 뒤꼍에 나가 서성였다. 산으로 이어진 조그만 텃밭에 잘린 배춧잎이 널브러져 있었고, 문여리처럼 미처 자라지 못한 배추 몇 포기만 멀쩡히 남아 멀뚱댔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시선에 올망졸망 돋아난 느타리버섯이 눈에 들어왔다.

피나무 죽은 그루터기에 몇 해를 두고 버섯이 자랐다. 탐스럽게 자란 버섯은 지금처럼 찬바람 불 때 된장찌개로 변해 입맛을 돋우기도 했다. 입안 가득 별미로 되살아났고, 꽃 진 계절에 꽃을 대신해 빈 들을 지키기도 했다. 꽃이고 노래였다. 계절을 지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것일 때가 있게 마련이다.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것들이 쓸쓸함에 맞서 두 팔 벌려 싸웠다.


스산하게 비 내리고 바람 부는 날에 나는 남의 노랫소리만 웅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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