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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Nov 12. 2023

겨울 2


한낮이 되어서야 선심 쓰듯 해가 들었다. 구름 없는 날에 받아 든 환한 방은 겨울이 주는 통 큰 선물이다. 다닥다닥 들어선 건물들은 서로 햇빛을 가렸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된다는 건 한 줌에서 또 반쯤 볕을 덜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가뜩이나 귀한 햇볕은 이마를 맞댄 건물에 가려져 귀하고 귀했다. 그래서 늘 뿌옇게 동이 텄다. 분명 해가 천지사방에 퍼지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창은 늘 뿌옇게 아침을 맞았다. 환한 햇살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것도 겨울이라는 데야 어쩔 수가 없다. 한 수 접고 들어가야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 게다가 취침등만 밝힌 듯한 어둑함을 싫어하지 않아 다행이다. 광합성하듯 밝은 햇살을 갈망하는 나라면 겨울의 내방은 절망일 터다.

기껏 무드등을 밝히고 심쿵한 노래라도 하나 잔잔히 틀어놓은들 감동할 누구가 없음에도 겨울 햇살은 눈치도 없이 종일 무드를 잡았다. 웃기는 놈이다.

어둑한 아침에 노트북을 켜려는데 실낱같은 빛줄기에 로고가 빛났다. 연출된 조명처럼 글자에 쏟아진 빛은 잠든 글자들을 깨워 매끄러운 표면에서 뛰놀게 했다. 기지개를 켠 녀석들이 초롱한 눈망울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심히 지나칠 수 없어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시시각각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들이 순간순간 기쁨을 준다. 찰나의 기쁨이지만 소중한 순간이다. 아, 예쁘구나!' 하는 감탄은 선물이다. 서릿발 햇살에 부서져 허무하다 해도, 우득우드득 밟히는 소리가 한동안 귓전에 맴돌 듯이, 짧아도 긴 여운을 남기는 것들은 곱고 어여쁘다. 이 계절이 만드는 빛의 매직이 마음에 들었다. 춥고 지루할 순간마다 화들짝 놀랄 보물 하나씩 감추고 있으려는지 누가 알까. 보물찾기 같은 게 산다는 것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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