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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Nov 15. 2023

거리에서


동네 이면도로는 대체로 한갓지고 여유로웠다. 출퇴근시간을 제외하면 노란 학원차량이 한낮의 졸음을 내쫓는 게 고작이었다. 어쩌다 까치 두어 마리 내려앉아 거닐었고 겁 많은 길고양이가 후닥닥 건너뛰었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는 채소장수차량이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기온이 곤두박질친 이후에는 그마저도 자취를 감췄다. 바람만 불었다. 발톱을 세운 바람도 아니었다. 어슬렁거렸다. 뒤춤진 바람이 하품을 쩍쩍해대며 동네를 어슬렁댔다. 지켜보고 있으면 곰방대 뻐끔거리며 소작농의  안마당을 기웃거리는 마름 놈 같았다. 몸짓 하나하나마다 알량한 마름 놈의 거들먹거림이 잔뜩 들러붙어 있었다.

커피숍에 앉은 여인네 둘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박장대소 어깨를 까불어대기도 했다. 귀를 쫑긋 세운다고 해도 이야기소리가 들릴 일은 만무했지만 눈에 들어온 몸짓만으로 짐작하건대 오가는 말은 가볍고 유쾌할 게 분명했다. 기분 좋은 몸짓이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도 유쾌하게 만들었다. 설령 나누는 이야기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다. 말이란 것도 결국은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느냐의 문제라서 그렇다.

너는 도란도란 얘기했고 나는 두런두런 들었다. 마음으로 듣게 되는 말은 그래서 듣는 귀에 따라 뜻이 바뀌고는 했다. 나는 '네가 정말 좋아!' 달달하게 이야기를 했고, 듣는 너는 '너 없으면 죽어버릴 거야!' 협박 조로 들을 수도 있는 게 말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하늘이 무너질 만큼의 대단한 게 아니라면 진위여부는 그다지 중요할 것도 없다. 가슴에 담아 입밖에 뱉지만 않는다면 나 듣고 싶은 말로 듣고 가슴에 담아두면 그만이다.

"있잖아? 어여쁜 네가 보고 싶어"

"사실은 나도 날마다 네가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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