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오늘은 포근한 봄날입니다. 머지않아 그대 닮은 봄꽃이 지천으로 피겠지요"
콩닥콩닥 나대는 가슴 달래 가며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도 모를 말들 끌어다가 복사꽃 화사한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색목인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아파했고, 그의 가슴에서 출렁이는 파도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문득, 파도 몰려오는 바닷가를 거닐고 싶었던 때였죠. 궁금한 것도 많고, 그만큼 상상에다 공상을 더해가며 꿈꾸던 시절입니다.
눈만 마주쳐도 발그레 얼굴 붉히던 계집애는 잘 살겠지요? 방바닥에 배를 깔고는 밤이 새도록 편지 한 장에 매달려 끙끙대던 때도 있었습니다. 턱수염이 까칠해졌고 계집애는 봉긋하게 가슴이 솟았습니다. 심장이 뛰고 침이 바짝 말랐습니다. 구겨지고 찢긴 편지가 방바닥 가득 뒹굴라치면 훤히 아침이 밝아오고는 했습니다. 세상이 궁금했고, 계집애가 궁금했지요. 되지도 않는 생각에 빠져 밤을 새우기 일쑤였습니다. 대문 밖에서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던 세월입니다. 엊그제 같은 세월이기도 합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을이면 낙엽보다도 먼저 그의 안부를 묻게 됩니다. 게다가 그는 오늘도 낙엽 밟는 소리가 좋은지? 묻게도 되고 대답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의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순수했고 유치했던 그런 때도 있었습니다. 볼펜자국 선명하도록 편지를 쓰고 귀하게 구한 소설책에 파묻혀 밤을 지새우던 그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붉은 단풍잎 몇 개 뜯어다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심히 보낸다는 게 어째 죄스러웠다 할까요. 그랬습니다. 이야기보따리 풀어놓고 라떼는 말이야.... 꼰대스럽게 시작되는 이야기의 전개가 어울릴 세월 앞에 섰습니다. 무심하지요? 세월이란 놈도, 순이라는 계집애도 다 무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