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닻 올려라!

by 이봄


손을 쭉 뻗어 너를 가리키는 순간부터 올망졸망 따라붙는 것들은 모두 다 내 몫인 거야. 뭐가 됐든 그래. 선택은 권리이기도 하고, 책임이기도 해서 피할 수도 없어. 그러니까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처럼 순간의 욕망을 어쩌지 못하고 떼를 쓰면 곤란해. 금방 싫증이 났다고 버리면 그만인 게 아니거든. 손가락으로 콕 찍어 선택한다는 건 그래서 쉽기도 하고 어마무시하게 어렵기도 하지. 나 몰라라 내팽개치고는 시치미를 뗄 수 있는 강심장이 아니라면 몇 날이고, 며칠이고 고민에 고민을 더해야만 하는 거야.

눈이 벌겋게 충혈되도록 고민을 했음에도 기어코 손을 뻗고 싶다면 냅다 뻗어야지 어쩌겠어. 그때부터는 앞 뒤 가릴 것도 없어. 씩씩 콧김을 뿜어가며 앞으로 뛰어나가는 거야. 마치 성난 멧돼지가 상대를 향해 달려들 듯이 과감하게 돌진하는 거, 저돌적이라는 말은 그럴 때 쓰라고 생긴 말이거든. 때로는 중간에 멈춰 서서 주판알을 튕겨볼 수도 있겠지. 이대로 앞으로 가? 아님, 여기서 멈출까? 고민을 해야만 한다면 그것도 많은 선택 중 하나일 터야. 매 순간 선택을 해야만 하고 그에 따른 또 다른 결과물이 매달리겠지만, 그때마다 회피하지 않고 책임진다면 비난할 것도, 비아냥거릴 이유도 없어. 장미 한 송이를 꺾다가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시인도 있는 걸 뭐. 눈에 담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손을 뻗었을 뿐이고 거기에 매달린 결과는 죽음이었을 뿐이야.

우연에 우연이 겹쳐 완성되는 게 인생이라고 했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 우연히 벌어지는 일들이 나를 그쪽으로 몰아가고, 나는 별다른 저항도 없이 순순히 이끌려가는 거.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갈래길은 우연이라는 놈이기도 하고 선택이라는 놈이기도 해. 둘은 어쩌면 동전의 양면일지도 모르겠어. 내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수시로 찾아드는 손님이기도 하고, 불청객이기도 하고.... 진수성찬을 내어줄지, 몽둥이찜질을 할지 고민해야 하는 게 사는 일일 거야.

닻을 올리고 돛을 펴는 순간 배는 이미 망망대해를 품에 품은 거야. 아니 바다의 품에 안긴 한 점 나뭇잎이 된 건가 모르겠지만, 그때부터는 바람과 햇살과 별을 불러 모아 파도를 넘어야만 해. 마음을 쏟고 땀방울을 더해가며 앞으로 나아가 마침내 찾아 헤매던 항구로 들어가야만 하는 거야. 만선의 깃발을 높이 매달는지는 모르겠어. 정해진 건 없거든. 쉽사리 가늠할 수도 없어서 어쩌면 장님 코끼리 만지듯 더듬거려야 하는 거 같아. 이만큼 정성을 쏟았으니 요만큼 과실은 있지 않겠어?' 하는 기대감으로 사는 거지 뭐. 세상 모든 일이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아. 먹고사는 것도 그렇고 애달파 잠을 설치는 사랑도 마찬가지야. 이왕이면 해피엔딩을 꿈꾸겠지만 새드엔딩이면 또 어쩌겠어. 눈물 콧물 훌쩍이다가 떠나는 거지. 그 옛날 웨딩카에 줄줄이 매달았던 빈 깡통처럼 선택에 들러붙은 책임은 시끄럽고 요란하거든.

"얘야? 닻을 풀어라. 어디 두리둥실 저 바다로 한 번 나가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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