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雪

by 이봄


발끝에 차이는 것은 그 본질과 관계없이 대접받지 못한다. 가볍고 하찮다. 가볍다는 건 그래서 업신여김을 받게 마련이다. 무겁고 흔치 않아야 일단 고운 시선을 받는 거고, 그런 말을 듣게 된다. 가령, 목욕탕을 간다거나 대중이 이용하는 시설을 방문했을 때, 그 입구에서 이런 문구를 마주했을 터다.

"귀중품은 카운터에 보관하세요"

귀한 물건은 무겁다는 얘기고, 무거운 것은 귀하다는 말이다.

반대로 가볍다는 건 늘 업신여김을 받았고, 그만큼 조롱의 대상이기도 했다. 경박하다느니, 경멸한다느니 하는 대접과는 동떨어진 푸대접의 대상이 되고야 만다. 모름지기 무거워야만 하고 흔치 않아야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물론 대접받으려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경박한 짓도 없다. 스스로 무게를 덜어내 가벼워지고, 두께를 깎아내 얇아지는 짓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절기상 大雪이었다. 큰 눈이 온다는 날이었지만 큰 눈은커녕 부스러기눈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빈 하늘에 햇살만 창창했다. 대설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그러하였다. 어쩌면 흔치 않아 귀한 대접을 받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허구한 날 내리는 눈은 귀함은커녕 천대의 대상이고 끝내는 욕받이로 전락하고야 만다. 육두문자가 난무하고 멱살잡이로 해가 저물 게 분명하다. 그러니 눈치껏 끼고 빠짐을 잘해야만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누구나 겨울이 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는데 눈이란 놈은 너무 야박하게도 입을 씻고 말았다. 함박눈은 너무 큰 기대라고 한다면 기꺼이 한 발 물러설 수도 있었다. 이 정도면 눈이야 하고 호들갑만 떨면 그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눈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마른장마처럼 빈 하늘만 쳐다보았다.

"야속한 놈 같으니라고.... 그래, 겨우내 뒤룩뒤룩 돼지처럼 살이나 찌워라!"

몇 번이고 창가를 서성이다가 투덜댔다. 가벼워 귀하지 못한 나는 바람에 깃털로 나부낄지도 모르겠다. 창에 기대어 무거운 눈송이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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