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by 이봄


얼기설기 몸집을 키운 것들이 서로를 자양분 삼아 어엿한 나무로 성장했다. 자고 일어나면 한 뼘씩 몸집을 키우는 세월이 아니라면 짊어진 인연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허리가 휘었을지도 모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면 곁에 선 네게 몸을 기대 숨을 돌렸다. 너와 나를 굳이 나눌 이유도 없었다. 서로 의지해 바람을 이겨냈고 어깨 위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어린 나무는 그렇게 나무로 컸다.

솔씨 두엇 움을 틔우고 뿌리내렸을 때 올망졸망 곁에 선 것들 동행이란 이름을 얻었다. 빗방울 몇몇과 햇살 한 줌이면 부족할 것 없어 다툴 일도 없었다. 종일 빈둥거렸고 종일 수다를 떨었다. 바람에 매달려 떼를 썼다. 산새 한 마리 날아들면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귀를 쫑긋 세웠다. 숲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세상 풍문에 심장이 뛰었다.

상수리나무와 산벚나무가 바짝 기대 자랐다. 바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시나무와 박달나무가 이마를 맞대고 있었고, 이웃한 자작나무는 다래덩굴을 잔뜩 머리에 이고 있었다. 숲은 비좁고 울창했다. 언제부턴가 바람은 숲의 겉만 서성이다가 이내 떠났다. 햇살도 마찬가지였다. 나뭇잎을 비집고 들어와 숲의 바닥에 닿는 햇살은 없었다. 한낮에도 숲은 어둡고 공기는 축축했다. 다툴 일 없던 숲에 투덜투덜 바람이 불었다.

한 뼘이라도 서로를 밀쳐내야만 했다. 따뜻하게 기댔던 어깨가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여기저기 불만이 터져 나오고 쩌렁쩌렁 목소리를 높였다. 구분 짓지 않던 너와 내가 담장을 쌓았고 거적문 같았던 사립문을 고쳤다. 수다스럽던 말들은 끊기고 악다구니로 변해 시끄러웠다. 얼기설기 쌓이고 엮인 것들 하나씩 둘씩 덜어내고 잘라내었다. 쌓인 세월은 그렇게 덜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릎이 이겨낼 수 있을 만큼만 남기고 모두 덜어내야만 했다. 동행이란 말은 그래서 하나가 천금의 무게를 갖고야 말았다. 머리에 소담스럽게 눈이 내리면 왁자지껄 시끄러운 동행은 없다. 눈밭에 남은 발자국은 그래서 십중팔구 홀로 걸어간 발자국이 대부분인 이유다. 휘적휘적 걷는 걸음이 벌써부터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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