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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Dec 18. 2023

비행飛行


투박하였다.

노을빛 번지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미풍이 잔잔히 불었고 시야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고요했으므로 숨 가쁜 날갯짓도 필요하지 않았다. 상승기류에 몸을 맡기고 두 날개를 곧게 뻗으면 그만이었다. 가끔씩 찾아드는 행운이었고 쉼이었다. 낙뢰에 화들짝 놀라 벌건 토끼눈을 떠야만 했다.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던 순간부터 줄곧 허둥대야만 했다. 아마도 그럴 터였다. 기억의 저 끝 어딘가에는 고요하고 잔잔한 한때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것은 아스라한 기억의 저편에 존재하는 전설과도 같은 얘기였다.

하늘을 난다는 건 분명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치기 어린 날갯짓에 낙뢰를 맞았고 예정에도 없던 폭풍우를 파고들어야만 했다. 고생을 사서 한다는 청춘은 그래서 늘 요동치고 놀라 시끄러웠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두 번째 비행이었다면....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번갯불에 콩을 볶듯 찰나의 순간을 번쩍이는 생각일 뿐이다. 그랬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회를 동반하는 생각은 잘라내야만 했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 쫓아내야만 했다. 가뜩이나 사나운 비행에 풀 죽은 걸음인데 속 시끄러운 생각을 끌어안을 이유는 없다. 누구나 처음이었다. 갔던 길을 되돌아와 오답을 지우고 정답을 쓸 수는 없었다. 아무에게도 다시 고쳐 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지나치면 그만이었고 빨간 펜 선생님의 지적질도 없었다. 잠시 잠깐씩 찾아오는 생각에 등 떠밀리는 회한이었다.

급전직하 곤두박질치다가 아득히 보이는  활주로에 마음을 놓았다. 명멸하는 불빛에 기대어 안심했다. 다 왔구나! 긴 비행은 고단했다 다독이는 마음이 들었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기억은 씁쓸했지만 그래도 쓴웃음 한 자락 펼치게도 된다. 다사다난했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끝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너 나 할 것도 없이 모두가 이구동성 같은 말을 쏟아내야만 했고 쏟아냈다. 종지부를 찍어야만 하는 순간에는 그만한 말이 없을 듯싶다. 고단한 하루였고 머리 복잡한 한 해였다. 아쉽고 후회스러운 날들이었다 고백이라도 해야만 했다. 성찰의 시간이었고 반성의 시간이었다. 끝을 마주하는 시간은 그래야만 했다.

시답잖은 생각으로 어둠을 쫓았다.

새벽은 아직 어둡고 깜깜했다. 남들보다 이른 아침을 깨웠다. 커피 한 잔을 홀짝거렸다. 쓴 커피 향이 나쁘지 않았다. 다정도 병이라는 동짓달 긴긴밤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은 병이 분명하다. 찰싹 몸뚱이에 달라붙은 지병이었고 불치병이다. 타고난 유전질환이기도 하고 애써 다듬어진 직업병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긴 대로 살다 가는 게 인생일 터라서 그다지 타박하고 싶지도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야 둥둥둥 예쁜  열기구 띄워놓고서 삶은 계란 한 알 까먹는 행복에 까르르 자지러졌는지도 모른다. 날마다 하늘 한 번 쳐다보며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소풍이었는지도 모른다. 소풍이었다 하자. 시인의 말처럼 그것도 봄소풍이었다고 빠득빠득 우기자. 비록 투박한 비행에 지독한 멀미를 했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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