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잉지 Aug 04. 2016

잡초 말살 대작전

CODE NAME_ GREEN


새로운 환경은 다양성 추가의 측면에서 좋다.

낯선 장소는 언제나 새로운 생각의 빌미를 제공한다.



호주에 왔다.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라곤 하지만 워킹(Working)에 비해 홀리데이(Holiday)의 비중이 막대하게 크고, 양심상 고백하자면 도피의 성질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타국에서 '여행'아닌 '생활'을 해보겠다며 무턱대고 집을 나선 차였다. 그래 놓고선 꼬박 한 달을 열심히 놀고 지난달에야 세컨 비자도 따고 종잣돈도 마련할 겸 농장에 들어왔다. 바쁘고 힘들 테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들 말했는데, 예상했던 바와 달리 지역 전체에 찾아온 이상 한파로 일주일에 겨우 이틀을 일하고 나머지는 유유자적 나로 가득할 뿐이므로 나는 이 곳 생활이 제법 마음에 든다.






대개 하는 일은 멜론을 포장하는 일이다. 예민한 귀를 파고드는 요란한 소음에는 결코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지만 달리 힘든 것은 없다. 가끔은 다른 일이 주어지기도 한다. 플랜팅(Planting; 모종 심기)이나 치핑(Chipping; 잡초제거) 같은. 단순노동이라고는 하지만 살아있는 것을 돌보고 접하는 일에는 지루할 틈이 없다. 이것은 일이 없던 어느 하루, 치핑을 도와주러 간 날의 기록이다. 우선 내가 쓸데없는 것에 과도하게 감상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려두어야겠다. 이어지는 의미 없는 상념들에 대한 변명으로.



Katherin, AU (2016)



6시 반, 오랜만에 이른 출근이었다. 밤을 지 한기에 어깨를 움츠리며 문 밖을 나섰더니 오렌지 빛 아침이 환한 밤을 밀어내고 있다. 시시각각 엷어지는 어둠이 유난히 붉었다.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지 가늠도 못한 채 황홀한 하늘에 빙긋 웃었다. 그땐 몰랐다. 저만치서 떠오르는 태양이 얼마나 끈덕지게 나에게 들러붙을 것인지를.


밭은 말 그대로 광활했다. 이 농장만 해도 광주 땅만 하다니, 한 평생을 작은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한국 워홀러에겐 입이 떡 벌어질만한 스케일다. 곧 그늘 한 점 없는 밭에서 치핑을 시작했다. 심어둔 멜론 양 옆으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잡초를 솎아내는 일이었다. 하늘은 끝 간 데 없이 넓었고 시야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넓은 땅 위를 평온한 고요만 감돌았다. 바싹 마른 흙이 바스락바스락, 걸음마다 부서져 내렸다. 무거운 곡괭이를 들어 올려 땅을 내리치면서 온갖 잡념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길 반복했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잡초, 라는 제목의 노래와 '콩밭 매는 아낙네-' 하는 멜로디가 무의식 중에 흘러나왔다.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잡초를 고르다 땅 위를 기웃대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면 굉장한 새떼와 넓고 낮은 하늘, 그리고 고개 숙인 동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뜻 밀레의 그림이 떠올랐다. 한 폭 그림 속을 차지한 기분이다.


바랜 풀잎들이 엉겨 붙은 밭은 이미 한바탕 휩쓸린 전쟁터 같았다. 익숙지 못한 곡괭이질에도 바싹 마른 잎들이 푸드득 푸드득 떨어져 나왔다. 잡초들은 줄기를 넓게 뻗어 자라고 있었는데 그 탓에 무성한 둥근 잎들이 짙은 밀림이나 숲, 혹은 늪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태양 아래서 싹을 틔우다니, 무엇보다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시 싹을 틔우지 못하게 뿌리를 뽑아."


지시사항이 전달되었다. 비쩍 말라버린 잎사귀 아래, 시체 속에 몸을 숨긴 전시의 인간들처럼, 숨죽인 채 자라고 있는 초록을 샅샅이 찾아내라고 했다. 잡초도 꽃을 피워 벌이 날아들고 나비가 맴돌았지만 나는 그 뿌리를 끊어내야 했다. 문득 울화가 치밀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과 사를 갈리다니. 이것은 목적에 따라 한 종을 말살시키려는 종간의 일방적인 홀로코스트는 아닌가. 자연에 가장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간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이렇게 다른 생명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었다. 잔인하고 이기적이다.




지평 아득한 밭의 한 고랑이 어찌나 길던지 한 줄의 잡초를 뽑는 데에만 꼬박 3시간이 걸렸다. 이랑의 끝은 신기루처럼 자꾸만 멀어졌다. 다만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기도 했고.


지팡이처럼 곡괭이를 짚고 발등까지 파묻히는 붉은 흙을 딛으며 기나긴 고랑을 걷고 또 걸었다. 사막을 횡단하는 엉터리 구도자처럼. 그렇게 온종일 세 줄의 밭을 치핑 했다. 온 길을 돌아보면 널브러 말라가는 초록에 눈길이 어지러웠다. 고작 하루 동 수많은 것을 죽인 마음이 뒤숭숭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비명에 젖은 풀내가 코끝에 매달려 가실 줄을 몰랐다.












잡초란 무엇일까.


잡풀, 그러니까 이름 없는 것을 말하는 걸까.

그렇다면 멜론 밭에서 수박이 나면 그것 잡초가 아닌가.


어쩌면,

목적과 이익에 반하는 개체는 무엇이건 '잡초'라고 명명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숨 가쁘게 달리는 한국에서 게으르고 나태한 나는,

효용이나 이익보다 재미와 아름다움을 더 추구하는 나는 뽑아야 할 잡초가 아니었을까?


나는 떠밀린 걸까, 떠나온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