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잉지 Jun 30. 2016

가시

상상 속 고통의 깊이


인도의 자이살메르는 사막 가까이 위치한 도시로 골드 시티라는 별칭에 걸맞게 황금색 풍광을 자랑한다.


골든 트라이앵글(델리, 아그라, 자이푸르)과 나란히 북인도의 대표적 여행지로 꼽히는 이 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여행객은 근처에 있는 작은 사막을 방문하는 1박 2일 투어에 기꺼이 참가한다. 나 또한 어느 날엔가 팀을 이루어 사막으로 향했다. 낙타몰이꾼을 포함해 일행은 10명 남짓. 이른 아침 출발해 느릿느릿 사막을 가로질렀더니 거진 해가 질 무렵에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곧바로 휘청휘청 가장 높은 모래 둔덕에 올라앉았다. 까마득한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는 해가 모래의 붉은빛을 받아 더욱 이글거렸다. 이런 근사한 날의 석양은 어찌나 빠르게 지는지. 곧 황폐한 땅을 뜨겁게 달구던 황홀한 빛이 자취를 감추고 새까만 어둠이 찾아왔다.


그 후 빛이라곤 찾을 없다. 타오르는 모닥불의 일렁이는 불으로 어렴풋이 주변의 시계를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다. 일행 모두가 불가에 달라붙었지만 밤과 함께 찾아온 짙은 한기는 쉬이 떨쳐지지 않았다. 결국 초저녁부터 켈룩켈룩 기침을 밭으며 침낭 속에 몸을 파묻고 있던 H가 백기를 들었다. 감기약을 삼키고 뜨거운 차를 연이어 들이켰지만 오한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그는 지프를 불러 하루 온종일 온 길을 홀로 돌아갔다. 시름시름 앓는 H를 보며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밤이 깊도록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떠드는 동안 'H도 있었으면 좋았을 걸'하는 아쉬움이 터져나오곤 했지만 그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그 때껏 손톱 밑에 박힌 가시에 신경을 집중하느라 진심으로 걱정도 못했다.


온몸을 오들오들 떨던 H보다도 보이지 않는 내 손의 가시가 더 신경 쓰여 담요 한 장 못 덮어주다니,

마음 한 구석이 구겨졌다.






지난주에 함께 일하고 있는 유리(Yuri)의 손에 습진이 생겼다. 그런 채로 일을 계속했더니 물집이 생기고 고름이 차 그저 물에 닿는 것으로도 고통스러운 상태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손이 느려졌고 앞 뒤 사정을 모르는 크리스티나의 눈에는 그것이 게으름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게 문제가 되었다. 이전에도 몇 번 경고를 받았던 유리에게 농장을 떠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일방적이고 급작스러워 모두가 적잖이 당황했다.


'타운에서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충격적인 처사에 놀랐음에도 어줍잖은 위로를 건네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남의 일이라는 건 이렇게도 말하기가 쉽다.



만약-

생각해 보려다 고개를 휘휘 저었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이나 고통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닌 고통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에 국한된다.


'다 잘될 거야'


책임질 수 없는 말을 건네고 돌아선 마음이 불편했다.












손톱 밑 가시,


아주 오래전 자이살메르에서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런 종류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서는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남과 나를 구분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과 아픔을 내 것처럼 함께 할 수 있을까


상상 속 고통의 깊이는 턱없이 얕고

타인의 아픔보다 나의 사소한 문제에 더 골몰하는 습은 언제고 러울 따름이.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움에 관한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