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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속 항해

#볼리비아, 코파카바나(Bolivia, Copacabana)

by 잉지


코파카바나에선 8시, 9시만 되면 졸음이 몰려왔다. 페루와는 겨우 1시간 차이니 시차 때문도 아닌데 9시면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그리고 새벽 2시, 제법 요란한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슬레이트 지붕이며 콘크리트 위로 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예사 비가 아니었다. 티티카카 호수가 쏟아져 내리는 건 아닌가 생각했으니까. 그래, 그 까만 회색 구름이 그냥 구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대로 아침까지 비가 내리면 침대 채로 떠내려가지 않을까'


이불을 뒤집어 쓰고 티티카카를 유람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다 까무룩 잠들었는데,

일어나 창밖을 보니 거리는 신기하리만치 바삭바삭 말라 있었다.








비 그친 아침 짙은 풀색의 집을 바라보며 '누군가와 함께라면 이런 곳에 살아도 좋겠다' 생각 했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고 저 큰 티티카카 호수를 바라보며 따뜻한 초콜릿 라테를 마시고, 뜨루차를 먹고. 가끔은 오리배 같은 걸 타도 좋겠지.


이 조그만 마을의 구석구석 작은 부스러기까지도 샅샅이 알게 될 거야, 3개월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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