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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by 잉지


방콕은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일 년에 두어 달쯤 함께 살고 싶은 곳이다.

맑은 공원에 앉아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때마침 전화가 울렸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끝에 엄마가 물었다.


집이 그립지 않아?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어버버 얼버무리고선 단숨에 미안해졌다. 나는 집이 그립지 않았다. 때로 외롭고 우울하고 쓸쓸했어도 집이 그리운 적은 없었다, 단 한순간도.






별안간 비가 쏟아지기에 테라스의 빨래를 걷었다. 거침없이 빨래를 분류해 각자의 침대 위에 걸쳐 놓으면서 '이렇게나 익숙해졌구나', 새삼 깨달았다.


나는 이 곳에서의 아침을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하고 많은 밤이 지나도 그 날들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나는 너무도 나로 가득했다. 다가올 날들에 대한 불안과 결정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고민과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나에 대한 의심 같은 것. 어쩐지 이젠 정말로 떠나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야 할 순간은 언제나 찾아오고, 언제든지 온몸으로 느껴진다. 어쭙잖은 아쉬움으로 그 순간을 놓쳐선 안된다는 그간 경험으로 배웠다.












6주 만에 태국을 떠난다. 겨우 6주.


생각해보면 내 첫 여행은 고작 한 달이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길게 느껴졌었는데.


여행을 거듭하는 동안 한 달이라는 기간이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 더 긴 여행을 하고 싶어.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그건 역시 욕심일까.


기분이 이상했다.

고작 며칠을 지냈을 뿐 인 것 같은데 사실은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났고,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는데 모든 것이 다 꿈만 같다니.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처음 왔던 길을 그대로 거슬러 공항으로 다.

분명 같은 길인데도 무척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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