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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by 잉지


응당 낯설어야 할 것이 낯설지 않은 만큼

응당 설레어야 할 것이 설레지 않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다.


왼쪽으로 어두운 활주로를 두고 빠르게 흐르는 비행 주의 사항을 한 귀로 흘리면서 그저,

졸렸다.


이륙을 하기도 전에 까무룩 들었다가 눈을 뜨니 창 밖이 알록달록 반짝이고 있다. 마치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다. 이게 영욕의 도시란 말이야? 납작 이마를 창문에 붙였다가 이내 다시 잠들었다. 그러고선 바퀴가 지면에 부딪히는 소리에야 깼다. 시계를 보니 4시 44분.


두어 시간을 날아 국경을 넘었다.

새삼 놀랍다.



Kolkata, India (2015)



새벽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란 줄을 서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다. 휘청휘청, 파란색 라인 위에 발바닥을 붙이려 애쓰며 머릿속을 뒤적인다. 나라가 바뀌었으니 인사도 바꾸어야지. 익숙해진 싸와디카를 덜어내고 어디 보자, 눈을 굴리는데 별안간 '메르하바'가 튀어나온다. 아냐 아냐, 넌 다음에. 선명한 인사말을 달래어 두고 겨우 나마스떼를 찾아내었다.


다시, 인도다.





어둑한 새벽녘, 이미그레이션을 지나 대기실 벤치에 둘둘 말린 침낭을 펴면서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을올렸다. 에고- 피곤해. 고생, 고생 사서 고생. 공항을 나서기도 전에 지끈 머리가 아파왔다. 이제와 생각니 태국은 모든 것이 쉬웠다. 둥글둥글한 사람들, 여기저기 널린 편의점, 좋은 음식, 근사한 바. 어디를 가도 놀거리와 즐길거리가 넘쳤다. 그곳이 주는 안락함에 빠져버렸을까.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 날이 밝아 버스정류장에 더니 알았다는데도 버스 번호를 세 번, 네 번 반복해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피식 웃고 말았다. 피로로 뻣뻣마음을 펴 크게 한 숨을 들이마셨다. 온통 희뿌연 아침, 도로 위를 지나는 사각사각 비질 소리가 개운했다.












버스를 타고 서더 스트릿(Sudder Street)으로 향하는 동안 뾰로통한 마음은 간데없이 사그라들었다. 서울서 부산 가듯 가볍게 국경을 넘었다. 심지어는 두 도시만큼의 낯섦도 없다. 집 앞 슈퍼에 나온 기분이랄까-. 커다란 눈으로 내비치는 궁금증과 관심이 싫지 않다. 안녕- 나 돌아왔어. 오히려 한 발 앞서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숙소를 잡곤 곧장 기차역의 외국인 창구를 찾아가 바라나시로 떠나는 표를 끊었다. 그러는 동안 만난 콜카타는 코가 따갑도록 매연이 가득했고, 정신없이 쏟아지는 소음에 귀가 아팠다. 소란함, 살아움직이는 활기. 하루에 열 장이나 찍을까 하던 사진이 열배쯤 늘어났다. 키득키득, 몰래 웃으며 한없이 즐거웠. 그래, 인도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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