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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by 잉지


괜스레 아침부터 바지런을 떨 길을 잃는 바람에 꼬박 세 시간을 걸었다.


빼꼼, 어느 정원을 기웃거리다가는 입양센터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이따금 외국인이 아이를 입양해가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창살이 가로놓인 창문 너머로 '하이, 헬로우' 불러 세우더니 대뜸 3000루피, 5000루피 하고 가격을 불렀다. 애들이 물건도 아니고 말이야. 액수도 터무니없었지만 가장 먼저 꺼낸 말이 돈이라니, 말문이 막혔다. 심통이 나서 입이 삐죽 나왔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죄다 닮아 보인다. 태국에서도 그러더니. 안면인식 장애가 생긴 건 아닐까 걱정 된다.


거리를 걷는 동안 잘린 염소 머리가 가득한 박스와 눈을 뜨고 죽은 고양이, 가슴팍에 구멍이 난 쥐를 연달아 마주쳤다.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늦었다. 액땜이야, 피폐해진 마음을 달래 보지만 뇌리에 새겨진 붉은 그림자들은 쉽게 흩어질 줄을 몰랐다.












캘커타의 가장 특이한 점이라면 언제라도 손에 잡힐 듯한 뿌연 공기를 꼽게 될 것 같다.

끈적하고 밀도 높은 공기, 귀를 찢을 듯한 소음. 한두 시간 시내를 걷고 나면 정말이지 혼이 쏙 빠진다.


저녁에는 해리를 만났다. (그와는 첫날 환전을 하러 갔다가 친해졌다.) 셀린과 살린, 줄리아와 해리의 친구들까지 일행이 모두 열이나 되었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이나 타운으로 향했다. 프랑스, 싱가포르, 영국, 인도, 한국. 제법 다양한 인종이 모여 기다란 행진을 하니 어째 날아와 꽂히는 시선이 열아홉 배는 되는 것 같다. 가는 길은 또 어찌나 긴지 바지런히 걸었는데도 꼬박 50분이 걸렸다. 허름한 레스토랑에 도착해선 둥그런 테이블에 복닥복닥 모여 앉아 산더미 같은 음식과 구름 같은 이야기를 꼭꼭 먹어치웠다. 그러고 나니 시간이 늦어 어떻게 돌아가나-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다. 현지 친구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람. 성큼성큼 도로로 나선 해리는 지나가던 트럭을 붙잡더니 기사와 무언가를 속닥였다. 그러더니 대뜸 뒤에 올라타란다. 어리둥절 잠시 멈추어있다가, 와하하 웃고는 저마다 기합을 넣으며 트럭에 뛰어올랐다. 도시의 매연은 어둠에 자리를 비킨 것 같았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시원했다. 부들부들 달리는 트럭의 가장자리를 꼭 붙잡은 손에는 쇠 비린내가 짙게 배었다. 결혼식 행렬에 누구보다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손을 흔드는 사람들에겐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요란스런 화답을 했다. 술도 한 방울 안 마셨는데 모두가 취해 있었다. 즐거웠다. 나를 둘러싼 이 기묘한 광경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캘커타에 온 것이 한 달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놀라웠다.



만약

해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떤 우연들은 너무도 절묘하고 기가 막혀서 소름이 돋는다. 늦은 저녁 거대한 도시의 인도가 더없이 새로웠다. 서늘한 밤공기에 덜컹덜컹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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