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적휘적 거리를 거닐다 세 걸음에 한 번은 멈춰 알은척을 하는 나를 보며 소피가 물었다.
다 네 친구들이야? 없는 데가 없네. 너 여기 있는 사람 다 아는 것 같아.
서더 스트릿에 발들인지 고작 3일 만의 일이었다.
매일매일 무언가 잃어버리고 있다. 그것이 양말 한 짝이나 귀걸이 한쪽, 혹은 낡은 스웨터나 칫솔 같은 것이라면 좋을 텐데. 왠지 내가 잃고 있는 것은 단어나 기억, 가장 최근엔 얼굴이라던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자주 두려웠다. 이 길의 끝에서 기어코 너를 잊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에.
기억되지 못하는 것은 존속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잊음으로써 나는 희미해진다. 지금쯤은 투명도 80% 부근을 향하고 있지 않을까.
이 다음엔 무엇을 잃게 될까?
머리가 시키는 대로 말고, 가슴이 향하는 대로 살아.
해리슨 아트센터에서 인도의 거대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는 샨티를 만났다. 6년째 세계를 누비고 있다는 그와는 어쩐지 비슷한 관심사가 많아서 꽤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기차 시간이 촉박해 아쉬운 만남을 끝내야 했을 때, 그가 말했다.
머리가 시키는 대로 말고
가슴이 향하는 대로 살아.
너무나 진부해서 어디 영화 속 대사로 나와도 손 발이 오그라 들 것 같은데, 그의 눈에 담긴 진심을 마주하고 보니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 낯선 이에게 마음을 담은 조언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라니, 근사하다. 흔들림 없는 말투에서 자신이 원하는 가치에 열심을 다해 살아온 사람임이 느껴졌다. 언젠가 가슴을 따른 삶을 저만큼의 확신으로 내보일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올까? 궁금했다. 어느 날은 무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고, 다음 날은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것 같은 날들의 반복을 포기하지 않으면 내게도 그런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