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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Jan 07. 2017

운명의 놀이동산

아무래도 조바심은 날 테니까, 그대는 서두르지 말라고 해줘요

 

회전목마와 롤러코스터 중 하나를 평생 타야만 한다면?

연말에는 이런저런 감정 소모가 많았다. 시들시들 말라비틀어져가던 차에 새해를 핑계 삼아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다. 그렇게 마음의 평화를 (애써) 되찾았다. 진정한 의미의 평화라기보다도 해탈이나 포기에 가까운 상태이니 굉장히 이상적이진 않지만 생활의 리듬은 확연히 평탄해졌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은 부정적인 감정에 초연해지고자 했뿐인데 모든 감정에 무심해졌다는 것. 그리하여 지난 일주일은 한 걸음을 디뎌 앞으로 나아가고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여 살아가는 일이 전부였다. 그런데 말이야,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한 주였는데 무엇이 이리도 허전한 걸까? 다시 생각해본다. 온갖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굴곡이 큰 삶을 사는 것이 좋을까, 이도 저도 연연하지 않은 채 무미건조하지만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이 좋을까? 출퇴근 길 내내 꼼꼼히 되밟아도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무엇이 좋다고 제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겠지만.






카페 일을 시작한 지도 4개월이 지났다. 그러는 동안 아는 사람도 많이 생겼다. 그중 하나가 Carlo. 84살이라는 이 할아버지는 이따금 카푸치노의 기원이나 케이크의 역사 같은 걸 알려주곤 한다. 나는 허스키하다 못해 거칠게 갈라져 바람이 새는 그의 목소리로 무언가 듣는 일을 좋아한다. 엊그제는 그가 '너는 공부 중인 거야?' 하고 물어왔다.


아니, 공부는 진작에 끝냈어. 엔지니어링 전공했는데 지금은- 너 보다시피 카페에서 일하는 중이야.


답하며 괜히 멋쩍어 어깨를 으쓱했다. 분명히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한 것 같은데, 불안정한 상태를 자신하지 못하는 나의 태도를 눈치챘는지 돌연 진지한 눈을 하고서 그가 말했다.


있잖아, 네가 지금 기억해야 할 단 한 가지 사실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언젠가는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거야.

어느 날은 네가 되고 싶은 것이 될 거야.

그러니 서두르지 않아도 돼. 초조해하지 마.


핑그르르- 마음 한 구석에서 무언가 팽이처럼 돌기 시작했다. 혀 끝에 미처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이 빙글빙글 맺혔다. '이런저런 고난이 있었지만 어쨌든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로 끝나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그다지 와 닿지 않았지만 무어라도 될 수 있을 거라는 그의 말에는 묘한 확신이 있어서 괜스레 든든했다. 정말로 그렇게 될 것이라 믿어도 될 것 같았다. 믿고 싶었다.


나보다 세배는 족히 더 산 노인의 말은 듬직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어리석어서 정답을 듣는다고 해서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조바심을 내려놓을 수는 없는 일이고,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흘러갈는지도 역시 의문이다. 하지만 다 아는 말, 흔한 위로여도 난데없는 그 한 마디가 참 기뻤다. 재촉하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잘 하고 있다고, 잘 될 거라고 다독다독. 그의 갈라진 목소리는 오래된 고목 같았고 나는 그가 뿌리내린 커다란 숲 속에 파묻혀 그대로 안도해도 될 것 같았다. 포근했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위로가 참 따뜻하고 고마웠더라고-


말하고 싶어서

기억하고 싶어서

써둔다.



그리고 사실은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괜찮아. 괜찮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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