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잉지 Jan 26. 2017

그대 사랑이 짝사랑은 아니었음을

부디 건강만 하소서


엄마가 아프다고 했다.



한동안 뜸하다 걸려온 전화를 통해 들은 말이 그랬다. 말문이 막혔다.






엄마 가슴에 생긴 것은 유선종이라고 했다. 종양의 한 종류란다. 처음 그것이 만져졌을 땐 생리 때면 생기곤 하는 몽우리겠거니 생각했단다. 그 후엔 곧 사라지겠지 싶어 두고 보았다고 했다. 이상한데, 이상한데 하면서도 삼주가 넘도록 병원을 미루었단다. 없어지겠지, 없어지겠지 괜한 희망이 한몫을 했을 거다. 그러면서도 커지는 불안감에 어쩔 수 없이 망망했을 거다. 서툴게 인터넷 검색 따위를 했을지도 모른다. 유방암이면 어쩌지, 이미 손쓸 수 없으면 어쩌지, 발목을 붙잡는 검은 상상들이 두려워 마음고생도 심했을 거다. 조직검사를 해두고 왔다는 엄마는, 큰일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게 전화를 걸어 주섬주섬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니-


장난처럼 진심을 풀어놓는가 했더니 이젠 괜찮다며, 재빨리 엄살 아닌 엄살을 주워 담았다. 그래도 수술은 해야 된다더라, 볼멘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엉겁결에 '응-' 하고 끊으려다가 멈칫, 전화통 너머로 사라지려는 엄마를 다시 불러 세웠다. 안녕을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큰 병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그간 무거웠던 마음과 여전히 남은 불안감 같은 것이 울컥 눈물로 치받았을 거다. 어찌할 줄 모르겠는 마음에 온몸을 조여드는 깊은 한 숨을 너털, 웃음으로 숨기며 어휴, 울긴 왜 울어 장난 같은 타박을 했다. 엄마는 폭삭 젖은 목소리로 딸 목소리 들으니 좋아서 그러지-, 해놓고서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좋은데 울긴 왜 울어, 울긴 왜 울어 반복하면서 나도 말을 잃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명치 반 뼘 아래쯤 생겨난 깊은 구멍이 소용돌이치며 모든 단어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슬픔과 무기력과 한스러움이 뒤섞이며 요동을 쳤다. 지금 이 순간, 전화기 이 편에 멀뚱 숨 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무릎 께에 놓여있을 손을 잡아줄 수도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줄 수도 없었다. 묵묵히 지켜봐 줄 수도 없었다. 도움이 될 만한 무엇도 기억나지 않았다. 고작 비행기 열몇 시간의 거리가 이렇게 멀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산인, 한국_ 엄마랑 꽃 놀이 (2016)



늙어가는 엄마가 아픈 것이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그 순간 가장 끔찍했던 건, 언젠가 미래에 다시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에도 엄마 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나였다. 그 순간을 위해 머물 생각이 없는 나. 언제나처럼 내 삶이 최우선인 나.












그 날 저녁엔 재작년 태국에 갈 때 적어둔 * 한 편을 엄마에게 보냈다. 요즘은 글을 쓰지 않느냐는 엄마의 물음을 반년이 넘도록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기던 차였다. 괜히 멋쩍어 무심한 척 덧붙였다.


엄마, 이 글 만명도 넘게 읽었어. 심심할 때 한 번 읽어봐. 우리 이야기야.



도대체 몇 번을 읽는지, 1이 사라지고도 한참 후에야 엄마는 답장을 보내왔다.


딸이 엄마 사랑하는 마음을 이 글을 읽으니 알겠네. 우리 딸 말이 없어 표현을 못할 뿐이지, 엄마 사랑을 모두 기억하고 있구나. 딸, 엄마는 내 딸들 잘 키웠다고 믿는다. 사랑해. 하늘만큼 땅만큼.


그 잘난 마음 말도 못 해서, 글로나 전하는 못난 딸을 하늘만큼 땅만큼이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엄마.

와중에 여태 짝사랑인 줄 알았네, 하는 말이 철썩 귓불을 때렸다.




엄마, 오랜 세월 그 사랑이 짝사랑인 줄로만 알게 해서 미안해.

그러나 한 순간도 그대 사랑이 짝사랑은 아니었음을 늦게나마 고백할게(알아줘).












엄마의 수술은 잘 끝났고요, 지금은 몸도 마음도 (표면상으로는) 회복을 끝낸 것 같습니다. 작년 생일부터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종종 엄마에게 꽃다발을 보내고 있어요. 그리 좋아하시는 꽃 이제 당신 손으로 사게 하지는 않으려고요. 꽃이 도착한 날이면 매번 거실 장식장 옆에 정성스레 꽂아두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시는 것이 기뻐서라도 꽃을 보내는 일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신 가까이 머무르지 못해도, 사랑하고 있음은 숨기지 않으려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운명의 놀이동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