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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Dec 31. 2016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지난해의 마지막은 인도에서 보냈다. 여느 해처럼 사람들은 들뜬 목소리로 카운트를 했고 까만 밤하늘 여기저기서는 폭죽이 터졌다. 그 와중에 한참 비뚤어진 나는 '매일 같은 하루가 또 오는 것뿐인데 왜 저리 기뻐하는 걸까', 홀로 골똘했다. 언어의 분절을 싫어하는 나에게 오늘과 내일을 '새해'와 '지난해'로 구분하는 일은 전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왜 새해를 기뻐하나요?


자주 물었다. 제대로 된 대답을 주는 이는 없었다. 질문은 답을 찾지 못했고,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올해 여름, 뜻밖에 친구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새'해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계획하고 희망하게 하기 때문이야.


똑같은 하루여도, 그것을 새로운 해라고 믿기 때문에 다시 무언가를 계획하고 희망하고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좋은 계기가 된다고 했다. 그런 이유라면 납득할 수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을 기념하고, 새로운 해의 시작을 축하하며 요란 법석을 떠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수도, 웃을 수도, 함께 기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


가만 사는 모양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비슷한 일에도 반응과 대처 천차만별이다. 똑같은 하루일 뿐이라고 볼멘소리를 하며 일찌감치 이불속을 파고드는 것도, 새로운 해가 왔으니 무언가를 시작해보자며 폭죽을 터뜨리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다.


세계는 인식으로부터 시작되고, 인식은 '나'로부터 기인한다.


누구는 물을 반이나 남았다고 하고, 누구는 반 밖에 안 남았다고 하는 것의 차이. 알람보다 한 시간 일찍 눈을 떴을 때 누구는 중간에 깼다며 짜증을 내고, 누구는 한 시간을 더 잘 수 있다며 기쁨을 느끼는 데서 오는 차이. 생을 대하는 그런 사소한 차이 모여 한 사람을 구성하는 근거가 된다. 다짜고짜 '좋게 생각해'라고 억지를 부리고 싶은 것은 아니다. 분류하자면 '긍정적 비관주의자' 쯤 되는 나부터도 썩 기쁜 사람은 못되고,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 타고난 기질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노력해 보는 것. 익숙한 사고의 흐름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측면을 보고자 애써보는 것. 얼핏 사소한 그 차이들이 미래의 나를 구성하는 토대가 될 것임을 잊지 않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어쨌든 우리는 스스로의 과거에 책임이 있지 않나.












요즘은 어떻게 하면 반복되는 생활을 지루하다 생각하지 않고 소중히 살아낼 수 있을까, 시시때때로 휘몰아치는 외부의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초연하고 평안하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져있다. 그 또한 사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서서히 변화할 것임을 믿는다.


웃는 얼굴로, 좋은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대하고 싶다.


살가운 인사로 마음이 풀리고

감사의 말 한마디에 응어리가 녹는 것처럼


작은 노력으로

세계가 조금 더 아름다운, 즐거운, 기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새해를 핑계 삼아 다짐을 한다.

올해는 조금 더 기쁜 사람이 되어봐야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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