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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Dec 10. 2016

동생아

그래도 지구는 돈다


나에겐 동생이 하나 있다. 무뚝뚝하고 과묵한 언니 대신 살갑고 애교 있게 엄마 곁을 지키는 동생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갑절이 넘는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았을 거다. 언니 사랑해, 이따금 문자를 보내오는 동생은 이제 4학년 2학기를 보내고 있다. 그마저도 이제 종강이 코앞이니 거진 끝났다고 봐도 무리가 없겠다. 예정되어 있는 것을 마무리하고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하는 시기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것이다. 그 고민들이 대화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요 며칠 전에는 뭔가를 배우러 학원을 다녀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이전에는 들은 적이 없던 말이어서


그런 데 관심이 있었어?


물었다.



나 관심 있는 거 아무것도 없어.



돌아온 말에 왈칵 마음이 무너졌다.


하고 싶은 걸 배워,


안쓰럽고 슬프고 난처하고 당황스러운 채로 넌지시 권했더니


하고 싶은 거 없어. 그래도 취직은 해야 하니까.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농담처럼 덧붙였다.



아, 지구 멸망 안 하나-






도전이 두렵다 하면 용기를 줄텐데

노력하는 일이 버겁다 하면 응원을 할 텐데

차라리 가망 없는 일에 미련한 고집을 부렸더라면

딱밤을 한대 때리더라도 나는 웃으며 네 편이 되어주었을 텐데.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말해 마음을 미어지게 하는 동생아.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이

이루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이

삶의 목표가

꿈이

욕심이 없는 것이 가능한 일이니.


잘하지 못해도 하고 싶은 일이

적어도 해보고 싶은 일이

하면 재미있는 일이

배우면 즐거운 일이 있지 않니.


어렵다는 이유로

힘들다는 이유로

늦었다는 이유로

잘 모른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


어렵고 힘들고 막막해도


사실은, 

사실은 하고 싶은 일이 있지 않니.




뿌리 깊은 열패감과 학습된 무기력, 만성적 좌절이 오랜 세월 너를 얽어왔다는 것을 안다.

부조리와 불합리에 순응하는 것이 차라리 익숙하고 편안한 기분도 안다.

나 또한 그랬으므로.


우리가 사는 곳은 가능성이 고갈된 사회,

노력도 재능도 쉽게 빛을 발할 수 없는 곳이다.


그래도 포기해서는 안되지 않니.

종내엔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 밖엔 남는 것이 없다 해도

그것만큼은 가져야 하지 않겠니.


천년만년도 아니고 고작 백 년 남짓,

한 번 사는 인생.


재능이라 말하기도 낯 뜨거운 능력과 이름뿐인 열정으로 죽어 바둥대고도

시간을 담보 잡힌 무산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해도


가난하고 보잘것없어도

썩 폼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스스로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지 않겠니.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너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힘든 길이래도

네 편에 설 테니


늦었다 말하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겁내지 말고

네가 즐거운 길을 찾아보렴.


우리 모두는 (구조적 측면에서) 대체 가능하지만

동시에 개인으로서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다.


너만이 살아낼 수 있는 삶,

그 자체로 이 시간은 특별해.


차선을 저울질 해 최선을 고르지 말고

네 삶의 근간을 들여다보고 너의 바람을 따르렴.


너는 더 이상 너를 흔들지 말라 했지만

내가 건네는 것은 현혹의 말이 아니란다.

나는 '최소한'을 말하고 싶은 거야.


무언가에 한 번 발을 들인 후엔 다시 시작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거야.

그러니 더더욱 조급함보다 신중함이 앞서야 할 때라고 생각해.


무심한 시간이 또 한 꺼풀 흐른 뒤에 우리는

지금을 회상하며 재글재글 떠들고 하하호호 웃을 거야.


그때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게

너 스스로에게 솔직한 결정을 하렴.


기다릴게,

그리고 무엇을 선택하든

네가 그걸 옳다고 여긴다면

나는 언제고 너 지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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