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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Oct 14. 2016

서로 다른 가치

가벼운 삶은 없다


우리는 같은 것에서도 다른 것을 구하며 살아간다.


가령 한 그릇의 김치찌개를 먹는다고 해 보자.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뜨거운 뚝배기를 뒤적이며 누군가는 오롯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누군가는 남은 하루를 견딜 든든한 에너지를 얻을 것이며, 누군가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따뜻한 식사의 추억을 만들고, 또 누군가는 그리운 엄마를 떠올리며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할 것이다.


한 끼 밥에서도 이토록 다양한 것을 얻는데

하물며 삶에 있어서는 어떨까.


세상에는 존재하는 생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






며칠 전에는 아주 오랫동안 기별 없이 지내던 동기 하나와 연락이 닿았다. 친구의 전화를 뺏아 든 그 애는 시답잖은 안부를 물은 후에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사람이 일을 해야지.



굳이 '한국'사람이라는 단서가 붙은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말문이 막혔다.


하고 있는데, 퉁명스러운 대답에 그 애는

그런 거 말고. 하고 대꾸하더라.


그 애의 기준에서 나의 일은 일도 아닌 모양이었다. 이런 식의 일방적인 판단이 처음은 아니다. 이래저래 알아온 수많은 사람만큼이나 나의 방랑을 바라보는 시선도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이는 '잘 나가네', '돈 많네'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고, 간혹 막연한 동경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언젠가 꽤 가까웠던 친구 하나는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그렇게 살면 좋아?'하고 진지하게 물어오기도 했다.


물론, 나는 이 삶의 방식을 좋아한다. 즐겁지 않다면 계속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렇다고 비난이나 동경 같은 타인의 시선까지 흔쾌한 것은 아니다. 대개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균적인 삶의 노선에서 두어 뼘쯤 떨어져 나온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쯤은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이제 사회 초년생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지인들에겐 나의 삶이 마냥 자유로워 보이는 모양으로 내가 지불하는 대가와 감수하는 나름의 고충은 턱없이 가볍게 넘긴다. 나는 그들과 다른 가치를 좇아 지금의 방식을 선택했고, 그 결과 남들보다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불안정한 삶을 얻었다. 그뿐이다.


세상 어디에도 가벼운 삶은 없다.


눈에 비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므로 누구도 살아보기 전에는 타인의 삶의 무게를 멋대로 가늠해서는 안된다.

저마다 스스로의 가치를 좇아 살겠지만, 그 누구에게도 그 방식을 평가할 자격은 없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한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지루하다고,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하지만 막상 떠나라 하면 그들은 수많은 변명을 찾아낸다. 결국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안정적인 생활이라던가, 가정이라던가, 집이라던가-.


삶은 그러니까,

저글링 같은 거다.


두 손에 잡은 것을 놓지 않고서 새로운 것을 거머쥘 수는 없다.

내려놓아야 가질 수 있고 포기해야 얻을 수 있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좋다면 얼마만큼의 자유는 내놓아라.

친구와의 시간을 포기할 수 없다면 그들의 곁을 떠나지 말라.



당신이 떠나지 않은 이유는

자유로운 삶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일 거다.

그것이 무엇이든 스스로의 가치를 바라보고 따르면 된다.


살아가는 일에는 '옳은' 방법이 없으나

비등한 무게가 있다.


어느 하나를 덜어내면 다른 하나를 얻게 될 것이니

당신이 선택한 삶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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