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자 중에서도 비주류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 고집의 일부로 대개 한국인이 많거나 특별히 유명한 장소는 일부러 피해 다녔는데, 남들과 다르고 싶은 마음과 만사 귀찮아하는 성미가 크게 한몫씩을 했다.
이번에는 늘 가던 아씨(Assi Guat) 대신 S의 추천을 따라 다샤스와메드(Dashaswamedh Ghat)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매일 아침 창 너머로 갠지스를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에 홀랑 빠졌기 때문인데, 마침 싱글룸이 없는 관계로 여차저차 골목 안의 다른 숙소에 짐을 푸는 바람에 애초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어쨌든 메인 가뜨에 거점을 잡고 보니, 주변이 온통 한국인이라 마치 한국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첫 밤을 보내고 일어나 창 밖에 꿈처럼 펼쳐진 그리운 -소란한 먼지투성이의- 아침을 내다보는데, 숙소 매니저인 산토스가 요란하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왔다. ‘아침밥! 올드 쿠미코!’ 외치기에 당연한 듯 ‘나중에-’ 대답하고선 피식 웃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누웠다가 밀린 일기를 다 쓰고서야 집을 나섰다. 알리에게 인사를 전하러 아씨 가트에 갈 참이었다. 거침없는 걸음으로 방향은 잡았는데, 족히 수 십 번은 걸었을 길이 완전히 처음인 것처럼 느껴졌다. 당황스러웠다. 변했구나, 변하지 않았구나, 정도가 아니라 일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해 기억나는 바가 전혀 없었다. 기억나지 않는, 익숙해야 할 길을 걸으면서 두려움에 머리가 아득해졌다. 이토록 불완전한 기억에 나는 얼마나 많은 마음을 의지하고 있는가. 이 다음에 잃을 기억은 무엇이 될까?
결국 한참이나 길을 헤매고 물어물어 겨우 알리를 찾아냈다. 낯선 안내자의 어깨 뒤로 빼꼼 고개를 내미는 나를 보며 그는 웃었지만 나는 괜히 풀이 죽었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시장에 들러 접시와 포크, 칼, 파파야, 당근, 토마토, 바나나 따위를 잔뜩 샀다. 생활인의 냄새가 난다.
방에 돌아와 와이파이를 연결하니 몇몇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와 있었다.
여전히 나를 신경 쓰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