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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by 잉지


방이 낯선 것들로 채워지는 일이 좋다. 태국에서 산 치약, 힌디로 쓰인 설명이 붙은 샴푸, 300밧(THB)을 주고 산 노란 티셔츠나 20루피(Rs)짜리 펜 같은 것. 익숙 것들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대체가 가능다. 무언가를 버리고 새 것을 들일 때마다 지난 삶의 흔적은 희미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배낭은 종잡을 수 없는 맥락으로 차올랐다. 딱히 '무엇'을 한다고 말할 수 없는 생활을 누군가는 타박했으나 오롯이 나의 소유가 된 시간들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나는 꼭 예전처럼 좁고 가느다란 골을 헤매기 시작했다. 한쪽은 강으로 가로막혀 있었으므로 선택지는 셋뿐이었다. 오른쪽, 왼쪽, 혹은 아래쪽. 대개 그 날 아침의 기분에 따라 셋 중 한 방향을 택해 무작정 걸었다. 내킬 때까지 걷다가 돌아가고 싶어 지면 돌아서 다시 걸었다. 분명히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고 생각했는데 방향만 간신히 맞아서 길을 잃는 일이 잦았다.


자꾸만 길을 잃느라 거리에서 꼬박 하루를 다 쓰고 저녁 무렵에야 (겨우) 돌아와 뿌자를 보았다. 쉴 새 없는 종소리와 요란한 음악이 정신을 쏙 빼놓았다. 불을 지핀 램프에서 매캐한 연기가 끝도 없이 피어올라 사람들을 감싸흩어진다. 박수를 유도하며 흥을 돋우는 아저씨 때문에 어쩐지 일어나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홀리(Holy-)한 일면 전국 노래자랑 같은 느낌이랄까. 맞은편 할아버지는 세리머니는 뒷전인지 아예 제단을 등지고 앉아 박수를 치는 일에만 열심이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장단을 맞췄더니 나중엔 손바닥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끝날 때 즈음엔 눈빛만 봐도 쿵짝쿵짝 죽이 잘 맞아서 나도 신이 났다. 진지한 종교행사에서 이리 흥을 내도 되나, 의뭉스러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활력活力.


정신없이 흘러가는 그 시간 속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아서 혼자여도 외로울 틈이 없었다. 그래서 그토록 그리웠는지 모를 일-, 이라는 생각을 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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