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벽이 노란 찻집에서 짜이를 마시고,
저녁에는 바나에서 이브닝-라씨를 마시는 일을 새로운 일과로 삼았다.
오후엔 화장터에 갔다. 평소엔 좀처럼 가지 않는 곳인데 무슨 바람이 일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화장터에는 늘 콕 집어내기 까다로운 특유의 기운이 있다. 음기라고 해둘까-. 느릿느릿 주변을 배회하는 동물들도 기묘한 분위기에 한몫을 한다. 사람들은 낮은 소리로 웅성대며 저마다 응집해 있다. 공기 중에 하얀 가루가 따가워 연신 눈을 비볐다. 눈 앞에 스러진 생을 두고 무심함이 온데 만연했다. 날리는 재는 죽은 나무이거나 죽은 이름일 거다. 살아남은 자의 태연함이 끝내 거북했다. 죽은 자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마구잡이로 뒤섞여있으나 어디에도 죽은 자는 없었다. 존재가 부재로 치환될 때, 우리가 '타인'의 죽음으로부터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살아 있음에의 안도? 삶에 대한 의지? 죽음에 대한 자각?
무엇도 옳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도 산 자의 것인가-
석연치 않은 의문을 두고 나는,
도망쳤다.
돌아오는 길, 어느 골목에서는 낡은 대문을 비집은 기침소리가 서늘하도록 짙었다.
노쇠한 몸통이 온통 들썩였을 것이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