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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Aug 28. 2015

또 하나의 불치

활자중독에 관하여


나는 쉴 새 없이 읽는다.




책은 물론 지나치는 간판을, 인터넷 뉴스를, 공연 팸플릿을, SNS 뉴스피드를 습관처럼 읽는다. 그 외에도 웹툰, 리뷰, 사용 설명서를 비롯해 영어·일어·중국어·프랑스어(비록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온갖 글자란 글자는 모조리 게걸스럽게 읽어 치운다. 가히 '닥치는 대로'라 할만하다.



아무것도 읽지 않는 시간을 견딜 수가 없는 사람처럼,

하루 종일 무언가를 읽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요즘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 원래도 읽지 않는 시간을 못 견뎌하기는 했지만 요즘은 스스로가 기이하다 여길 만큼 '읽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부자리에서부터 엎드려 '읽기'를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반찬 하나를 덜렁 꺼내 밥을 먹으면서도 읽고, 양치를 하면서도 읽고, 심지어 귀를 파면서도 읽는다. 그렇게 웬 종일 읽다가   가슴팍에 책을 내려    든다.          .


 깨어나 읽 읽다 잠드는 생활을 얼마간 했다. 그러다 어느  '이건 아니잖아?'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심해진 활자중독을 앓고 있는 것인가.



이 문제의 결론을 찾기 위 나름의 고민을 거듭했다. 중독의 기미가 있긴 했지만 언제부터 이렇게 심해진 것일까? 읽는 행위에 이토록 집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꽤 오랫동안 이어진 원인의 제기와 반박 끝에 나는 '외로워서' 혹은 '두려워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도) 나를 옥죄는 시간을 견딜 수가 없거나 주변의 일들, 막막한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무의식적으로 '읽는 행위'로 도망을 친 모양이다. 언제나 내 안식이자 도피처가 되어준 책 속에 눈을 박고, 글자로 머리를 가득 채우면서 또 하나의 하루를 흘려 보내기 위해 발버둥 친 거다.



삶의 거대한 확장이자 소멸.

무한한 세계를 여는 가장 작은 문이자 내 세계와의 단절을 야기하는 가장 가까운 열쇠.







'읽기'는 가장 손 쉬운 도피였다. 복잡한 사고로부터의 달콤한 휴식.


 읽는 행위로 끊임없이 도망온 나 달았다고 해 읽기를 줄이거나 그만둘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또 하나의 '불치', 활자중독을 껴 내일을 준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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