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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Apr 07. 2016

나에게 좋은 사람

수고했어, 오늘도


학창 시절은 나에게 썩 즐거운 기억이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너무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것도 한 가지 이유가 아닐까 한다.






중학교 시절 무슨 바람이었는지 나는 지켜야 할 규칙 몇 개를 만들었다. 번호를 매기자면 열한 가지쯤 되는 다짐이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머릿속에 되새기곤 했다. 다짐하고 또 다짐해 그대로 나의 일부가 되길 원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열심히 지켜 아직 기억나는 것 들이 있다.



잘못한 일은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이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

기타 등등.



대부분 나보다 남을 우선순위에 두는 다짐이었다. 이 이상한 규칙들을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의지로 지켰다. 일어난 모든 잘못은 나의 탓이었고 나보다 주변인의 편의를 앞세웠으며 배려하려 애쓰고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규칙들은 나를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느라 나를 돌보는 일을 등한시했고 남을 높이느라 나를 낮추었다. 선택을 양보하 나에겐 싫은 것을 강요했다. 남에게 친절하려 노력했어도 나에겐 불친절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런 규칙으로는 남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지금 나는 그때와 전혀 다른 규칙을 따르며 산다. 누구보 나의 감정에 솔직하고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하다. 다른 이의 기분을 위해 마음에 없는 말을 꾸며내지도 않고 귀찮은 일을 떠맡지도 않는다. 하고 싶은 일과 만나고 싶은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쓰고 모르는 사람들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 나의 의사를 최우선에 두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대신 '내가 정말 원하는 것 일까?' 고민한다.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의 의사에 관대하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알고 이해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이런 변화는 말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이전에 나는 사소한 일에도 버릇처럼 말끝에 '그렇지?'를 덧붙여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곤 했다. 지금은 '나는 그래. 너는 어떠니?'하고 묻는다. '그렇지?' 묻던 나는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했지만 '나는 그래.'라고 답하고 '너는 어떠니?'라고 묻는 나는 나와 상대를 존중한다.


스스로를 아끼는 일은 이기적인 일도 아니고, 자기만족에 빠진 나르시스트가 되는 일도 아니다. 다른 의견을 그저 수용하는 대신 상대와 나 사이의 합의점을 찾는 일은 때로 귀찮고 성가시다. 그러나 나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애쓰고 존중하는 일은 스스로를 훨씬 더 값진 사람이라 느끼게 한다. 나를 사랑해야 삶을 사랑할 수 있고, 그 후에야 소중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 나를 고려하지 않은 배려는 서로에게 부담스럽고 불편한 일일 뿐다. 나를 존중 후에야 다른 사람도 존중할 수 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합리적이고 진심 어린 방법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나를 배려하고서야 진정으로 남을 위할 수 있었고 나를 이해함으로써 남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달콤한 거짓 대신 입바른 말을 쏟아내는 나는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탁을 거절하는 나는 누군가에게 얄미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따박따박 잘못을 지적하는 나는 누군가에게 탐탁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나에게 만큼은 좋은 사람이다. 나는 예전보다 더 건강한 마음으로 사려깊은 관계들을 유지한다. 변화는 기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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