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잉지 Mar 28. 2016

좋아해요, 사랑해요

망설이지 않으려구요


편지가 도착했다.


우편함을 통해 편지가 온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짧은 손톱을 세워 봉투의 스티커를 살살 떼어내면서 설레는 마음이 발을 동동 굴렀다. 즐거워 어쩔 줄 몰라하며 조심스레 펼쳤다. 구겨질세라 애지중지하며 몇 번이고 읽었다. 꼭꼭 눌러쓰듯 글자를 짚어가며 따라 읽어도 보고 가만가만 혀끝을 움직여 속삭이듯 읽어도 보고 편지를 썼을 카페 안의 너를 상상하면서도 읽고 편지 속의 순간을 회상하면서도 읽고 네가 그려둔 미래를 떠올리면서도 읽었다. 발끝이 꼼질꼼질 해졌다.








제일 오래된 편지는 1999년에 쓰여졌다. 편지를 모아둔 상자에는 적어도 10배쯤 되는 추억이 더 있다.




편지에는,

시간과 마음과 '우리'가 담긴다.



기록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일상에서 흔히 쓰게 되는 형태라면 일기나 기행문,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남기는 단상이나 비망록쯤이 있겠다. 이런저런 다양한 형태의 기록 중에서도 편지는 유달리 특별한 느낌을 준다. 나는 그 이유를 편지가 담고 있는 것들에서 찾는다.  


편지는 소중한 시간으로 가득 차 있다.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시간, 공간을 넘어 전해지는 시간, 편지를 기다리는 시간과 전해진 너를 읽는 시간이 모두 종이 안에 남는다. 편지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사람의 마음을 듬뿍 담고 손 안에 머문다.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써 내려간 손글씨의 힘은 실로 굉장하다. 똑같은 이야기여도 시간을 따라 흩어지는 말이나 가상의 공간에서 나누는 대화와는 또 다르다. 무엇보다 그 속에는 '우리'가 있다. 다른 기록이 과거의 나를 복기한다면 편지는 지난날의 우리를 복기한다. 일기가 기억하기 위해 쓰인다면 편지는 전해지기 위해 쓰인다. 누군가를 향해 쓰인 글이므로 필연적으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일기나 단상처럼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의 유대와 따뜻한 관계가 살아 숨 쉰다. 전해진 후에도 오랜 시간을 두고 읽히며 그 의미와 가치를 더해간다는 점은 덧붙일 필요도 없다.


편지 속에는 그 시절의 너와 내가 함께 한다. 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우리의 시간과 대화가 같은 페이지에 새겨져 있다. 네가 전한 마음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내게 닿았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곁에 남는다.


그러니까 내게 도착한 것은 편지뿐만이 아니었다.

언제고 열어볼 수 있는 너의 마음이었다.










SNS에는 심심찮게 '전화번호부가 날아갔어요' 라거나 '핸드폰 바꿨어요'하는 말과 함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요청이 담긴 글이 올라온다. 다른 쪽에서 연락을 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 관계의 유지 여부는 한 사람의 선택에 위태롭게 달려 있다. 나중에, 하고 미뤄뒀다 잊기라도 한다면 영영 끊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글을 읽고 그렇게 사라질 인연들을 생각하면 조금 허망하다. 가상의 공간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끈은 가늘고 약해진다. 우리에겐 조금 더 물질적인 것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언제고 사라질 수 있는 인터넷 플랫폼이나 핸드폰을 바꿀 때마다 지워지는 연락처, 혹은 언제든지 끊고 달아날 수 있는 메신저 말고. 손에 잡히는 것, 일방적이지 않은 것, 보관해 두었다가 두고두고 꺼내어 볼 수 있는 것, 시간과 공간과 애정을 담은 것. '소중히 다룰 수 있는' 근사한 무언가.













덕분에 오랜만에 편지를 모아둔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서툰 마음과 서툰 글씨로 주고받은 편지, 축하하거나 응원하거나 위로하는 편지와 망설이다 전하지 못한 편지들이 있다. 종이를 메운 저마다의 글씨와 그 시절의 이야기가 좋았다. 지난날 친구들과 나누었던 이야기와 그때의 고민과 꿈과 말버릇 같은 것도 고스란했다. 여태 모아 온 이야기와 추억은 제법 묵직했다. 나도 모르는 새 잊고 있던 이야기들을 다시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 모든 편지에 '사랑한다'는 말이 넘치도록 담겨 있었다는 거다.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듯

사랑해, 하는 말이 쓰여 있었다.



나는 내가 늘 표현에 서툴고 인색한 사람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꼭 이성 간의 감정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닌데 '사랑해'하고 말했을 때 받는 오해와 어색한 표정들 때문에 점차 꺼리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더 사랑할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많이 표현한다고 닳는 감정이 아니고 사랑해, 말하는 것은 헤픈 것이 아니다. 사랑스럽다 느낄 때 솔직하게 그리 말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나.



그녀의 편지는 좋아해요, 로 끝났다.

내 안에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좋아해요, 사랑해요.

언제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너의 마음을 재지 않고

나를 말하는 것을 겁내지 않고


좋아해요, 사랑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개인의 취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