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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Oct 27. 2017

안개를 들여다보는 자의 속내

MaLeod Ganj


이따금 인도를 드나드는 동안에도 나는 이동을 하는 일에 인색해서 별달리 다녀온 곳이 없다. 그런 이유로 맥그로드 간즈(Mcleod Ganj, 이하 맥간)에 발을 디딘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녀온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칭찬하고 틈만 나면 그리워하기에 내심 궁금하던 차였다. 기대가 과했나 보다. 꼬박 한 달을 머문 주제에 이런 말은 머쓱하지만 시끄럽고 작은 그 동네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게으른 나의 여행이란 걷는 일과 어딘가에 주저앉는 일이 전부다. 그런 내게 맥간은 걷기 좋은 곳이 아니었고 앉아 있을 곳도 마땅찮았으며 딱히 먹기 좋은 곳도 못됐다. 고작 여섯 걸음 폭의 거리는 온종일 길게 늘어선 차로 꽉 막혀있고 운전자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클락션을 울렸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조용한 곳을 찾아 헤매는데 썼다. 벼락처럼 온몸을 찢어 발기는 소음이 끔찍해서 길을 걸을 땐 귀를 틀어막았다. 미간을 찌푸리고 괜히 혼잡한 거리를 노려보기도 했다. 역시 조금 일찍 떠나는 편이 좋겠다고 수십 번 생각하다가 훌쩍 한 달이 갔다.


그래서 이곳에 흥미로운 것이라곤 부재하는가- 하면 아니, 안개가 있다. 맥간은 시시때때로 안개의 습격(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을 받았다. 안개는 '밀려'오거나 '덮쳐' 온다. 예고도 없이 산 너머에서 시작되어 순식간에 사방에서 몰려오곤 눈 깜짝할 새에 울창한 숲을 낀 작은 마을과 불투명한 하늘을 빈틈없이 뒤덮는다. 저 멀리 산을 보이지 않는 세계로 소외시키고 나면 차례로 집과 차가 사라졌고, 이윽고 사람을 비롯한 온갖 생물도 자취를 감췄다. 그러고 나면 한 치 앞뿐인 아주 작은 공간이 남는다. 마치 거대한 벽이 성큼성큼 전진해 온 것 같다. 좁아진 시야는 괜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창살이 없을 뿐 영락없는 감금이다. 꾸역꾸역 밀려든 안개가 짙어지면 하얘진 세상에 눈이 멀었다. 눈살을 찌푸려도 도무지 보이는 것이 없어서 금세 정신이 혼곤해졌다. 누군가 눈 앞 가까이 손바닥을 갖다 대고 있는 것 같다. 보이는데 보이지 않고 무엇도 분간해 낼 수 없다. 미심쩍은 얼굴로 오래도록 그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이 그 곳에서의 유일한 소일이었다.


안개는 꼭 특정한 의도를 가진 것처럼 집요하고 은밀하게 끈덕진 촉수를 뻗었다. 옥상에 앉아 있으면 재빠르게 회백색의 가장자리가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움직임은 언제나 섬찟할 만큼 빠르고 망설임이 없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나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아 생물에는 빗댈 것이 없다. 열대의 늪지와 어둠, 끈적한 공기, 기분 나쁜 습기와 축축한 그림자 등이 음습하고 교활한, 상상과 악몽 사이의 존재와 앞다투어 떠올랐다.


그렇게 석연찮은 기운에 휩싸여 희뿌연 안개에 잠식당한 마을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마음이 서늘해왔다. 고스란히 보이고 피부에도 선연히 느껴지는데 붙잡거나 밀치거나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아주 오래 머물기도 하고 어느 날은 닥쳤던 것만큼이나 순식간에 물러가기도 하는데 그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야가 맑아지고 탁 트인 거리는 부지불식간에 낯설어졌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불신의 눈초리로 안개가 드나드는 것을 지켜볼 때면 저것이 음흉한 속내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은 의심이 떠올랐다. 그럴 때 나는 별로 이성적이지 못해서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끊임없는 추궁의 눈길을 보내곤 했다. 네 꿍꿍이를 알아내고 말 거라는 듯 끈질기게.


높은 지붕 위에, 사람들의 어깨 위에, 낮잠 자는 개의 눈꺼풀 위에 앉았던 안개가 마을과 산 것으로부터 앗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찰싹 들러붙었다가 진득하게 떨어져 나가는 길에 저만 사라질 순 없으니 분명 무언가 가져가고 있을 텐데. 무엇도 흔적 없이 떠날 수는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안개를 들였다 보내는 이 동네는 매번 무얼 조금씩 잃고 있을 텐데, 그것은 무엇일까. 저 안개가 조금씩 남기고 가는 것도 있을 텐데 그건 또 어떤 종류의 것일까. 꼭 저만큼 습하고 희끄무레해 시야를 흐리게 하는 그런 것일까. 그런 생각에 망연히 빠져있다 정신을 차리면 벌써 하루가 끝나 있었다.


자주 알 수 없는 것에 골몰해서인지, 시시때때로 시야를 잃고 흐릿해졌기 때문인지 그 곳에 머무는 동안은 마음도 기분도 생각도 선명하지 않고 뭐든지 조금은 미묘하고 희미하고 아리송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 흐려진 모서리, 사라진 경계, 뭉개진 픽셀들 사이를 둥둥 흐르며 땅을 밟는 발과, 벽에 기댄 손과, 주저앉은 의자가 죄다 들러붙었다 뜯어지고 섞여가는데 나는 어디에서 무엇이 얼마쯤이나 사라졌는지도 모른 채 어리둥절 바라만 보고 있는 기분.


나는 딱히 울적하지도 지루하지도 그렇다고 굉장히 흥미롭지도 않은 상태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있었다'고 하는 편이 가장 알맞을 것 같다. 무엇도 명확하지 않은 채로, 존재하지 않고 질량이나 질감 없는 무언가처럼. 명확한 실체(있었다면 말이지만)를 잃어가면서 '있'는 동시에 은근하게 스러져갔다. 나와 세계를 분리하던 경계가 파슷, 파슷 어느 때고 흩어졌다. 나는 아마도 나를 잃어버리는 중이었다. 점점 실체 없는 것이 되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했다. 그러면서 이건 전부 다 저 축축한 안개 때문이라고 엄한 안개 탓을 했다. 그러니까 누군가 물어온다면 이곳의 명물은 트리운드에 올라 바라보는 별도, 설산에서 쏟아지는 폭포도, 달라이 라마나 티베트 정부의 소재도 아닌 안개, 안개라고 답하리라고도.












한 달을 막 넘겼을 때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도망치듯 맥간을 떠났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안개의 속내가 무엇인지 따위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이 하루에도 몇 번씩 앗아가는 것이 어떤 활기(생명력) 인지도 모른다고 지레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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