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없는 비망록
01.
이 낯선 도시에 안도를 느낀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거뭇한 어스름에 묻혀 분주한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곤 어쩔 수 없이 너털 웃었다.
집에 왔다, 그리운 나의 집
첫 숨에 덜컥 긴장이 풀렸다. 나는 이곳을 사랑하는구나, 설명할 수 없어도 느낄 수 있다. 바싹 말라 붙은 그리움이 힘없이 풀어져 내렸다. 그리울 때면 눈을 감고 떠올려 걷던 거리는 기억보다 더 길더라. 해가 뜨면 골목을 가득 메울 반가운 얼굴에 걸음걸음 웃음이 났다. 새는 설렘을 거두어 안고 골목 끝에 있는 집에 닿았다. 문간에 짐을 내려놓고 아침이 밝기를 기다렸다. 익숙한 공기, 냄새와 안개-. 아무리 들이마셔도 빠져나가고 마는 것을 한껏 들이키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뱉는다.
01-1.
길을 나서자 여럿이 알아보고는 웰컴백을 외쳤다. 살금살금 다가가 놀래 주기도 했다. 이년 가까운 공백이 무색하도록 골목은 그대로였다. N은 짜이를 끓이고, R은 옷을 팔고, B는 라씨를 만든다. C는 여전히 같은 셔츠를 입고 같은 모양의 풍선을 판다.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인사를 건네 왔다. 이전과 같은 말로 알은척을 하며 들어오기를 청한다.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시간의 띠를 한 바퀴 꼬아 지난 아침 속으로 뚝 떨어진 것 같아. 기억 속의 거의 모든 것이 제자리(라고 해도 될까)에 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비슷한 아침을 맞았을 사람들의 일상이 낯설었다. 그대로인 것은 하나도 없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 인 것 같다.
02.
쿠미코엔 할아버지가 없었다. 나는 치사하게 슬프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05.
이 곳에서는 놀랍도록 시간이 빨리 간다. 딱히 무얼 하지 않아도 정신을 차리면 금세 하루가 끝나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충만한 기쁨이 올라와 입꼬리에 걸린다. 눈을 몇 번 감았다 뜨면 하루가 깜빡깜빡 꿈처럼 지난다. 외로움도 지루함도 관념이 된다. 애쓰지 않아도 흘러간다. 아름답다.
06.
사비나가 저만치서 나를 발견하곤 인사를 하려다 넘어질 뻔했다. 벌떡 일어나 그 애에게 달려갔다. 저 무구한 반가움이라니, 왈칵 눈물이 날 것 같다.
06-1.
사비나와 밥을 먹었다. 올해 아홉 살, 지지난해엔 일곱 살. 쑥쑥 자랄 나이인데 하나도 크지 않은 그 애를 보며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걱정이 됐다. 오물오물 무얼 삼키는 그 애를 보면 너무 기쁜데도 마음 한편이 어수선해진다. 나의 최선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는 탓이다. 다 먹고 나오니 그 애가 눈을 내리깔고 슬그머니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인사한다. 전에 없던 머뭇거림이다. 막무가내로 사달라고 조르는 것도 곤란했지만 저런 얼굴이라니. 그 표정이 오래도록 목에 걸려 컥컥 헛기침을 했다. 달려와 안기는 팔에 느껴지는 주저함, 내 품에 안긴 그 애에게서 느껴지는 전에 없던 거리감에 마음 한 구석이 파사삭 부서졌다. 서글펐다. 조그만 손, 석연치 않은 웃음, 비밀을 당부하는 말. 딱 그만큼 아이들은 자라 있었다.
07.
'쿠미코상, 타다이마-'
외치며 우당탕 쿵쾅 들어오니 쿠미코상이 '오카에리-' 하며 맞아준다. 홈 스윗 홈.
08.
쿠미코상은 지난 38년간 바라나시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다. 매일 아침 여덟시에 조식을 만들고 자는 손(客)을 깨워 밥을 먹이고 수없이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을 것이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보잘것없는 여행자 나부랭이의 마음에도 견고한 벽이 생겼는데 서른여덟 해라니, 그 무게를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22.
거리를 걸으면 심심찮게 조롱과 희롱을 받는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같은 건 궁금해해봐야 알려주지 않더라. 건들거리고 이죽거리고 나쁜 농담을 뱉는다. 혀를 날름거리고 비아냥대고 무례를 범한다. 위압적인 태도로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저들의 삶의 터전인 이 곳에서 나와 그들 사이의 권력을 생각한다. 그들의 지난 인생을 상상한다. 너는, 나는, 우리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24.
지난해엔 늘 여름을 앞서서, 어딘가에 닿고 나면 좇아 여름이 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자꾸 겨울을 앞서고 있다. 천천히 오는 겨울을 벌써 여러 번 맞았다. 겨울로 돌아가는 도돌이표가 많은 시간을 살고 있다.
27.
영원히 살 것처럼 애착한다. 그러나 삶은 영원하지 않고 오직 한 번 뿐이며 무엇도 돌이킬 수 없다. 그 불영원성으로부터 소유는 불가능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집착과 열망에서 일부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욕망 없는 삶의 수동성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27-1.
며칠 전엔 사비나랑 다퉜다. '디아를 사지 않으면 너랑 말 안 할 거야. 우린 이제 친구 아니야.' 하는 어린애 말에 적잖이 상처받았다. 입을 꾹 다물고 멀어지는 그 애를 지켜봤다. 서운한 마음보다 그리운 마음이 더 커지고서야 쭈뼛쭈뼛 그 애를 만나 부둥켜안고 화해했다. 별로 어른스럽지 못했다. 애나 나나 미숙한 건 같다. 우리는 화해 기념으로 즉석 사진을 두 장 찍었다. 그다음엔 사진을 넣을 액자를 샀다. 그 애를 위해 선물 포장을 부탁했다. 커다란 앞니를 환히 내보이며 폴짝폴짝 노래 부르는 그 애를 보며 한 편 기쁘고, 한편 슬펐다. 뭐든지 해주고 싶은 마음과 이렇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매번 날카롭게 대립한다. 이런 면에선 좀처럼 발전이 없다. 옳고 그름의 경계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건 누가 정하는 걸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그중에 옳은 것은 무엇일까. 과자를 건네면 모두에게 나눠주고 마지막에야 제 입에 넣는 그 애는, 두 개가 있으면 꼭 내가 하나를 고를 때까지 기다리는 그 애는 눈물이 날만큼 애틋한걸. 어두운 길을 걷다 미끄러지는 내 손목을 붙든 그 애 손아귀는 단단했다. 그 작고 여린 것은 어쩌면 나보다 강한 것도 같았다. 약한 건 나다. 스스로의 행동과 신념마저 확신하지 못하는, 확신하지 못하는 것을 행하는.
28.
백패커(Backpacker)가 줄고 그룹 투어가 늘었다. 사람들에겐 여행에서 마저 실패를 겪을 여력이 없다. 삶의 무게라는 건 언제나 혼자 짊어지기엔 너무 크다.
28-1.
단란한 중산층 가족이 레스토랑에 앉아 영어로 대화를 한다. 원래도 인도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지만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힌디를 배제하려 한단다. 언어는 그저 소통의 수단에 한정되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 속에서 다듬어져 온 지역의 고유한 언어는 말 이상의 것을 함축한다. 언어는 단지 말이 아니라 살아있는 정체성이다. 그런 걸 잃어버려선 안되는데...
29.
사람은 상대가 선택하여 보여주는 일부를 본다. 그마저도 제 멋대로 본다. 단계를 거칠수록 진실(혹은 보여주려 했던 진실)은 멀어진다. 타인은 왜곡된 상상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30.
아침엔 테라스에 앉아 자주 시간을 보낸다. 강가를 향해 턱을 괴고 해가 뜨는 걸 지켜본다. 바지런한 사람들이 강변에 모여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하고 배드민턴을 치고 배를 젓는다. 아침의 활기를 바라보는 것은 퍽 기분 좋은 일이다. 사각사각 비질 소리, 짙은 안갯속에 녹은 소란한 아침.
34.
밤이 되면 강 너머에선 간헐적으로 폭죽이 올랐다. 그걸 가리키니 옆에 있던 친구가 눈을 감아보라고 했다. 그는 내게 자신이 보는 것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계단 아래엔 탈의실이 있어. 그 앞엔 강아지 세 마리가 잠들어 있고. 왼쪽에서 친구 세 명이 걸어와. 집에 가는 길인가 봐. 강가엔 작은 배가 한 척 들어왔어. 그리고 강 너머에선 다시 불꽃이 터졌는데, 이번엔 분홍색이야.'
그 애가 들려준 풍경은 내가 보던 것과 사뭇 달랐다. 그 풍경을 담고 눈을 뜨자, 이전과 조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색도 분위기도 시야도 묘하게 낯설었다. 픽, 웃음이 났다. 우리는 이렇게 나란히, 또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구나. 같은 곳에 앉아 다른 것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것을 느끼면서. 눈을 감고 귀 기울이는 일은 타인을 경험하는 가장 쉽고 가까운 방법인지도 모른다.
36.
겨울 이맘때가 되면 새로 태어난 강아지들이 즐비하다. 골목 어귀에서 그중 하나를 만났다. 눈을 게슴츠레 뜬 어미는 어디가 아픈지 몸을 덜덜 떨고 있는데 눈도 못 뜬 새끼는 아랑곳 않고 아랫배에 들러붙어 늘어진 어미의 젖을 힘껏 깨물었다. 거기엔 어미의 고단함과 새끼의 절박함이 단단히 맞물려 있었다. 오래도록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37.
아침에 일어나 차를 마시는 건 주요한, 그리고 거의 유일한 일과다. 나는 습관이라는 미명 아래 매일 찻집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차를 주문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누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오늘은 이반을 만났다.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 평소엔 뭘 하냐고 묻기에 심드렁하게 '아무것도' 했는데 뜻밖에 '대단한데?'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지' 라며. 역시 포장은 대수다. 별거 안 하는 자의 공감과 유대인가. 이따금 무언가를 해석하는 사람들의 시각은 놀랍도록 다채롭고 생각지도 않다가 자주 감명받는다.
38.
이따금 찻집에 앉아 오래도록 N의 움직임을 들여다본다. 한 치의 망설임도, 낭비도 없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숙련된 손. 그가 움직이는 방식은 놀랍도록 효율적이다. 그 적확한 움직임에 담긴 세월, 같은 걸 상상하면 막연한 경이감이 찾아온다.
40.
인도에서는 대개 가업을 이어 일을 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하던 가게를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운영한다. 높은 확률로 미래가 정해져 있는 삶이라는 건 어떤 느낌일까?
41.
인간으로서 내 안에 무엇도 연장되지 않는 건 너무 우울한 일이야, C가 말했다.
42.
J가 생각이 많으냐고 물어왔다. 마음이 힘들면 잠시 돌아와 쉬었다 가라고 했다. 오래 연락하지 않아도 어쩐지 그는 다 알고 있다. 삶이 생각에 침체되면 그건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 네가 그래 보인다고 했다. 아차 싶었다. 무언가 개운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에 생활이 침착되어 오래 흐르지 못한 탓이었다. 사실은 알면서도 고집을 부렸다. 여행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임을 명심하라고 했다. 삶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거였지, 중얼거렸다. 남은 여정의 반을 뚝 잘랐다. 돌아가면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머물러야지. 인간으로서의 무엇을 연장해봐야지. 여태 여행하며 배운 것 중 하나, 언제고 돌아갈 수 있다고 느껴지는 때가 온다. 그때가 오면 돌아갈 수 있다.
44.
정체의 이유를 알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문제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45.
S는 자신이 브라만이 아니기 때문에 샨슈크리트어 같은 건 배울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했다. 개개의 인간이 어떤 능력(과 한계)을 타고난다고 믿는 것은 한 인간의 잠재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48.
종교가 왜 생겼는지 알아?
S가 물었다.
글쎄, 믿기 위해서?
종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고 납득할 수 없는 것을 납득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허상을 좇으면서도 논리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니까. 결핍과 몰이해를 덮기 위한 절박한 환상인지도 모르지.
52.
사람은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 익숙한 사람, 익숙한 거리, 익숙한 일, 익숙한 음악, 익숙한 하루. 비슷한 일들로 저마다의 리듬을 만든다. 반복되는 반복은 하나의 관성이 된다. 사람은 그렇게 만들어진 저마다의 관성을 따라 산다. 관성은 그대로 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신념이 된다. 그것이 어느 방향의 흐름이든 그것을 바꾸는 데는 대단히 큰 결심과 힘이 필요하다.
55.
한 번에 90일 밖에 머물지 못하는 것, 육 개월이 지난 후엔 인도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늘 번거롭고 짜증스러웠다. 그런데 이번엔 어쩐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야 하지 않았다면 떠나지 않았을 테니까. 떠나기 위해서는 가끔 어떤 계기(혹은 핑계)가 필요하다.
55-1.
사람들은 자신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일을 남에게 하는 것은 꺼리지만 자신이 개의치 않는 일은 거리낌 없이 행한다. 그건 자주 폭력의 형태가 된다. 주의해야 할 것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원치 않는 일이다.
55-2.
허상을 좇는 삶은 삐걱대기 마련이다. 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관계도 마찬가지.
56.
처음과 마지막에 대해 생각한다. 번호나 순서를 매기는 일은 무의미하다, 고 생각하면서도 이건 올해의 마지막 짜이, 마지막 아침, 마지막 인사- 구태여 되새긴다. 그러다 의문한다. 마지막이기 전에 알 수 있는 마지막은 없지 않나, 하고. 개별 사건의 범주에서 모든 사건은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이며 유사 사건의 범주에서는 어떤 사건도 처음이거나 마지막일 수 없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이름 붙이는 마지막은 죄다 성급한 억측이 아닌가, 싶었다. 상자를 열기도 전에 고양이가 살았다거나 죽었다거나 말할 수는 없는 거니까. 이것은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이고 마지막이거나 혹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나의 마지막이거나 마지막이 아닐 마지막을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57.
함께라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곁에 없다고 해서 혼자인 것도 아니다.
59.
굉장히 개운한 기분이 아닌데도 배낭을 꾸릴 땐 습관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반년을 지나는 동안 배낭은 나를 담았고 나를 닮아갔다. 네 종류의 티와 여섯 권의 책과 두 개의 컵. 네 개의 수첩과 쉰 하나의 펜. 섬유유연제와 데톨과 가글. 사소하지만 가볍지 않은, 그러나 기꺼이 남겨 짊어지는 것이 남았다.
60.
영원한 것을 유한한 것에 새기면?
62.
무엇을 타고 어디로 향하는 일을 좋아한다. 어딘가로 가고 있지만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다. 수많은 삶을 '지나'가고 '스쳐'간다. 함께 살아가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 삶과 유리된 차창 속의 인간. 그것이 나의 결핍의 핵심 이리라 짐작한다.
63.
기차나 비행기에 몸을 싣는 일은 너무도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이것이 일상적이기 때문에 감흥이 없는 것인지, 혹은 감흥이 없기 때문에 일상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빠른 속도로 지난 몇 달과 멀어진다.
다음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