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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Aug 09. 2018

(아직은) 평화롭습니다

말과 자극, 악의의 부재


하루에 네 대 있는 마을버스를 타고 한 시간 가량 깊은 산등성이를 구불구불 지났다. 산을 넘자 채도 낮은 초록으로 무성한 숲과 얕은 밭을 양쪽에 끼고 폭이 좁은 도로가 이어졌다. 실수로 몇 정거장을 더 가 내리는 바람에 삼십 분쯤 되돌아 걸어야 했다. 밭 귀퉁이마다 웃자란 옥수수가 수더분했고 한가롭게 나는 수십 마리 잠자리가 걸음을 늦췄다. 지척의 축사에선 드문드문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뜨거운 바람을 깊이 들이쉬자 금세 얼굴이 달아올랐다.






비파사나*는 현대에 전해오는 여러 명상 수행법 중 하나로 내가 경험한 첫 번째 명상법이자 (아직까지) 유일한 명상법이다. 지난해 인도에서 아주 기초적인 배경지식도 없는 채로 처음 코스에 참여했고 수많은 의문과 오해를 품고 나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수련생이 아닌 봉사자로서 참여했다. 이것은 아주 개인적인 기록이며 수행법과 가르침은 최대한 배제하고 경험을 쓰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인도의 오래된 명상법 중 하나인 비파사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으로 2500여 년 전 보편적 괴로움에 대한 보편적 해결 방법으로 전파되었다. 종파적이지 않은 이 명상법은 정신적 불순물을 제거하여 인간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참가자는 10일간의 코스 기간 동안 수련장 안에서 지내며 살생, 도둑질, 성적 행위, 거짓말, 취하게 하는 물질을 금하는 다섯 가지 계율을 따른다. 모든 수련생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 아침까지 침묵을 지켜야 하며 모든 형태의 의사소통(몸짓이나 수신호, 아이 컨택, 메모 전달 등)과 신체접촉이 제한된다. 코스 기간 중에는 다른 수행법과 종교적 의식을 삼가는 것이 권고되며 약물과 술, 담배뿐만 아니라 읽거나 쓰는 일, 음악을 듣는 일, 요가와 운동 또한 금지된다. 휴대폰과 기타 전자기기는 입소 시 운영진에게 위탁하며 코스가 끝나기 전까지 편지, 전화, 방문객을 포함한 외부와 연락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네시에 자고 열한 시에 일어나던 일상이 열한 시에 자고 네시에 일어나는 패턴으로 순식간에 옮겨갔다.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새벽 명상을 했다. 아침을 먹고 씻고 어제 입은 옷가지를 빨아 앞뜰에 널어둔 후 다시 명상홀에 앉는 것이 여덟 시. 지난 몇 달간 잊고 있던 아침을 마주하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퍽 좋기도 해서 괜스레 웃음이 났다.


일과 중 명상 시간은 하루 열 시간을 살짝 웃돈다. 이것은 육체의 활동을 극단적으로 제약하는 방법으로 육체적 극한이 됐고, 동시에 정신적 활동이 유일한 활동이 되는 방식으로 정신적 극한이기도 했다. 일과를 마치고 방에 돌아오면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입을 다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 눈을 뜨면 그저 캄캄한 어둠이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했다. 하루 대부분을 꼿꼿이 앉아 있을 뿐인데도 피로해서 잠시라도 틈이 나면 숙소로 돌아가 쓰러져 눕기 바빴고, 눈만 붙이면 꿈도 없는 잠을 잤다.





 말의 목적은 말이 아니기를



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소리에 너그럽지 못한 인간으로, 열흘간 침묵의 약속은 내게 축복과도 같았다. 말과 외부 자극이 사라진 일상에서 주의를 사로잡는 것은 청개구리, 개미, 잠자리와 거미, 바람과 햇살 따위였다. 새삼스레 존재감을 뽐내는 풍경이 새로이 사랑스러워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말간 얼굴에 늘어진 티셔츠를 꿰어 입고 맨발로 걸었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말단까지 느꼈다. 달콤한 침묵과 고요에 얼굴을 부비면 굳어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생동감이 요동쳤다.


걷는 일의 목적은 걷는 일이 될 수 있다. 사는 일의 목적은 사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말의 목적은 말이 아니기를 바랐다. 목적과 의미를 품은, 소리 이상의 것이기를 소망했다.


한시적이나마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찾아온 평화는 말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나를 흔들고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말은 언제나 '외부의 자극'으로 이질적인 성질을 갖는다. 일단 어떤 말이든 듣고 나면 다양한 형태로 마음이 동요하게 되고 이후엔 일종의 정신적 면역시스템이 발동해 이해든 납득이든 부정이나 반박이든 반응을 일으키며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의도치 않았거나 오로지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말은 너무도 자주 후회나 상처 혹은 실망감, 분노가 된다. 그래서 묵언의 규칙은 중요했다. 우리는 입을 여는 순간 거짓말하거나 진실을 숨기거나 타인에게 상처 줄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다. 침묵으로써 그 가능성은 차단될 수 있다. 사람은 말하지 않을 때 반절로 무해해진다.





Full of Sweetness



함께 한 사람들은 대체로 선의가 넘쳤고 좋은 기운으로 가득했다. 나이와 관계없이 서로에게 존대했고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고 배려했다. 그러면서 나보다 곱절은 더 산 사람들과 격의 없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리저리 부대끼면서도 사람들 사이엔 이상하리만치 갈등이나 분노가 없었다. 어쩌다 피곤하고 예민할 때도 선의로 가득한 온화한 미소를 마주하면 순식간에 피로는 잊히고 마음은 누그러졌다. 전반적인 분위기랄까, 공기랄까. 절로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마음의 부정성을 떨쳐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그런 사람들 속에서 나도 당연한 듯 평온하게 지냈다. 한점 흐트러짐 없는 평정한 상태, 깊은 고요였다. 누가 돌멩이 아니라 돌산을 던진대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행복한 사람들 틈에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부끄럽지만 이전에는 시간도 마음도 생각도 모자란 탓에 봉사랄걸 해 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바라는 것 없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이토록 기쁜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시시때때로 온몸을 환희 밝히며 벅차오르는 충만함을 느꼈다. 나의 시간과 노동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오로지 선의로 꽉 찬 느낌. 그 행위에 어떤 우월감도 없다는 것이, 정말로 안타까움과 순수한 마음뿐이라는 것이 스스로도 가장 놀라웠다. 자애롭고 평화로운 마음은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휴식이자 위안이 됐다. 이전 같으면 짜증이 솟구쳤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따뜻한 시선과 진심 어린 걱정을 건넬 수 있었다. 봉사자로 머무는 동안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Metta Bhavana



매일 밤, 공식 일과가 끝나고 모든 수련생이 숙소로 돌아가면 봉사자들은 홀에 남아 메타 명상을 했다. 메타 바와나(Metta Bhavana)는 비파사나 명상의 논리적 끝맺음으로 다른 존재를 향한 선한 의지의 개발을 말한다. 오늘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오늘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메타 명상은 이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모든 생명이, 나아가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평화롭기를, 자애롭기를 바라며 끝난다.


온 마음으로 모두의 행복을 소망한 후에 반짝, 눈을 뜨면 심장 깊숙한 곳부터 스물스물 행복해졌다. 평온한 마음에 미소가 떠오르면 자연스레 두 손을 모으게 된다. 손의 온기가 맞닿으면 온몸으로 따뜻한 기운이 번졌다. 기쁨과 선의로 충만한 마음이 경계를 벗어나 흩어지는 걸 느꼈다. 그럴 땐 샘솟는 사랑을 주체 못 해 무어라도 끌어안고 싶었다. 어떤 존재라도 무슨 일이라도 사랑으로 자비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분 좋은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누구에게라도 전하고 싶은 그 시간을 나는 정말 좋아했다. 오직 이 시간을 위해서라도 다음 열흘을 기약할 수 있었다. 거기엔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기쁨이 있었다.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비는 것으로, 그저 이런 마음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구나, 놀랍고 기쁘고 신기했다.


불과 일주일 전에 이런저런 뉴스를 보며 고민했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그 사람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됐지? 사랑하는 내 친구는 왜 힘들고, 모두의 삶은 왜 이렇게 고될까? 우리는 왜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화내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조금 더 기쁜 삶을 살 수 있을까?


질문의 끝에는 번지르르한 말만 남았고 몰려오는 무기력감에 나는 금세 주눅 들었다. 그러다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아, 모두가 행복하면 좋겠다.' 그 한숨 같은 탄식이 마음에 박혀 한동안 괴로웠다.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뜬구름 같은 바람으로 마침표 찍는 내가 너무 안일해서. 저 좋을 대로 느슨하게 살고 있는 주제에 뱉는 속 편한 말이 치열하게 사는 누군가에게 모욕이 될까 봐. 혹여 한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사람에게 나의 나태함이 상처가 될까 봐 무서웠다. 저마다 열심인 친구들에게 감히 위안도 격려도 조언도 건넬 수 없었다. 마음밖에 없는 말이 너무 초라해서 슬펐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여럿이 함께 모여 같은 염원을 품고 있자니 어쩐지 슬픔 대신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악의라고는 하나도 없는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불가항력으로 행복해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동안에도 같은 바람을 전해왔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했다. 어쩌면 모두가 조금씩 더 행복해지는 미래가 아주 먼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묘한 위안을 받았다. 더 많은 사람이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상상을 하면 더없이 행복해졌다.





반응하지 않는 삶의 주체성에 대한 오해



생물은 유쾌한 자극은 갈망하고 불쾌한 자극은 혐오하며 그 과정에서 흔히 괴로움을 만든다. 그건 자연적이고 무의식적인 흐름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의식적으로 지각과 감각에서 반응으로 연결되는 비가시화(습관화)된 고리를 끊을 수 있다. 나는 단계적인 경험을 거치며 사건과 상황을 감정으로 연결하지 않는 방법을 학습했다. 이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집착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었는데, 지금에 와선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동안은 부작용(?)에 시달렸다. 나는 극단적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회피의 수단으로 감정적 연결과 반응의 차단을 선택했다. 그러자 마음은 평온해졌지만 삶의 의욕 또한 사라졌다. 늘 한 걸음 물러서 관조하니 일상이 무료했고 스스로의 삶에 무책임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집착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뿐인데 주체성과 욕망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 상태에서 첫 번째 명상을 했고 자극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반응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이미 멀찍이 물러선 생의 전선에서 계속 떨어져 있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그건 어디까지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반응하지 않는 삶의 주체성에 대한 회의와 오해를 푸는 열쇠가 된 것이 '반응하는 대신 행동하라'는 말이었다. 나는 고통의 회피를 목적으로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상태를 도달점으로 삼았다. 반면 비파사나에서 말하는 평정심이란 갈망과 혐오에서 벗어나 객관성을 확보함으로써 맹목적이고 무분별한 반응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하여 문제를 파악하고 행동하기 위한 과정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평정한 마음의 다음 단계에 실천의 단계가 있었던 거다.





절대적 보편의 진리



몇몇 의문과 오해를 풀었지만 몇은 여전히 남았다. 예를 들면 명상이 절대적 보편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 고통은 모든 존재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형태와 주체가 다를 진대 '절대적 보편'의 해결책이라는 것이 성립 가능한가? 맹목성을 경계하라고 하면서 이것만은 의심의 여지없는 보편의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만약 이것이 절대적인 해결책이라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오롯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오해에서 비롯되는 문제인가? 무신론적 입장을 표방한다 해도 어떤 절대적 진리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그 자체로 신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지 않나?


비파사나는 나에겐 퍽 좋았다. 다른 많은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줬다.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의 얼굴도 몇 떠올랐다. 그러나 모두에게 추천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어느 날은 남은 의문도 사라지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보편의 진리라는 개념에 대한 회의는 이번에도 지우지 못했다.





한없이 다정한 순간



말없이도 사람들은 열흘 치의 친밀감을 쌓았다. 서로의 사소한 습관과 옷차림, 걸음걸이 같은  알게 . 어느 저녁엔 쉬는 시간에 바람을 쐬러 나갔더니 모두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해서 눈길을 좇으니 노란 달과 보조개처럼 패인 작은  하나가 지붕 위에 올라 있었다. 시간이 멈춘  다들  박혀 서서 옴짝달싹 않고 골똘히 달만 바라봤다. 풀잎이 바람에 사그락 거리고 풀벌레가 찌륵찌륵 울었다. 한없이 다정한 순간.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 다들 저만치 거리를 두고 뚝뚝 떨어져 있는데도 돌아선 어깨를 모두  안은  같았다. 같은 곳을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애정과 친밀함, 다정한 눈길과 마음, 대가 없는 우정을 나누고 싶었다.


마지막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애정과 호의와 감사를 전했다. 일부러 전해주는 말들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이상적인 유대와 공동체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도 같아서. 말하지 않는 동안 쓰고 싶은 것이 잔뜩 생겼다. 흘러넘치는 말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이런 걸 썼다. 조용한 삶은 즐거웠다. 안온한 열흘을 보낸 후에는 마음에 분노나 어떤 형태의 부정성도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선의와 기쁨이 나를 타고 흘렀다. 일상은 너그러워졌고 목소리에는 힘이 빠졌다. 행동에는 여유가 생겼고 감각은 예민해졌다. 더 이상 조바심 나지 않았다. 센터에서 보낸 시간은 내가 사랑했던 여행지의 시간과 닮아있었다. 함께지만 혼자였고, 들이쉬고 바라보고 느꼈지만 자주 침묵했다. 아름다웠다.







그곳에서의 날들을 생각하면 새벽 여섯 시, 열린 창으로 스며들어 명상홀을 비추던 비스듬한 햇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키 큰 나무 아래 일렬로 놓인 의자 다섯 개의 아침과 낮, 밤 풍경을 유난히 좋아했다. 저녁 쉬는 시간이면 지붕 위에 낮게 걸리던 달도 빼놓을 수 없다. 사락사락 숨죽인 발걸음 소리와 뜨거운 공기, 따뜻한 시선을 기억한다. 눈을 감으면 잠자리 날던 하늘과 함께 미세한 풀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따가운 볕 아래 불어오던 더운 바람을, 나뭇잎 사이로 빛나던 햇살을, 한껏 들이켜 부풀어 오른 시간을, 자연스레 떠오르던 미소를 잊지 못할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런 것들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림자마저 희미한 나날이었다. 종종 눈을 감고 깨어있는 채로 꿈을 꿨다. 꿈은 게걸스레 시간을 삼키고 기억에 선명한 부재를 남겼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잃어버린 시간의 묘한 자각만 남긴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눈을 감곤 했다. 고요 속에서 나는 자주 나를 잊었다.


분노를 비롯한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최근 몇 년간 나를 떠난 적 없는 화두였다. 이해하고 헤아려보려고 아무리 애써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 때문에 분노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자주 무너졌다. 약자를 향한 혐오나 폭력, 억압과 부당한 차별을 마주하면 기어코 화가 났다. 그러다 분노하되 미워하지는 말자, 기뻐하되 오만하지는 말자, 슬퍼하되 절망하지는 말자는 나름의 타협점을 찾은 것이 겨우 올해 초의 일이다. 분노는 나를 해치는 감정일지언정 변화를 만드는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분노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방법으로 분노를 배제하고 구체적인 실현의 원동력을 만들 수 있을지는 더 생각해 볼 문제지만. 어떤 의문의 답은 분명한 반면 어떤 의문에는 이해하고 경험으로 체득하기까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질문을 잊지 않는다면 언제든 알게 될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일단은 지금의 최선을 다 하기로 했다.







바깥세상을 등지고(?) 이런저런 소식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동안 안희정의 공판이 있었고, 세월호의 국가 책임이 인정되었고, 고은이 최은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어느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밀린 뉴스를 몰아 보는 동안 한시적 평온은 급속도로 흔들리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한 평화는 무지를 기반한 것이었다. 가짜 평화의 탈을 쓴 무지였는지도 모르고. 그럼에도 평온한 상태를 일시적이나마 확인하고 체험하는 경험은 귀중했다.


너무도 부족한 제가 어떻게 변화를 만들 수 있나요? 하고 묻자 선생님이 답했다. 온 마음을 다해 능력껏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만약 실패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라고. 그 말을 듣자 망설이다 나서지 못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포기하지 않는 것, 최선을 다하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세 가지 결심을 마음에 꼭꼭 새겼다.


마주한 현실은 달라진 바가 없지만 어떤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여전히 모자라고 미흡하지만 더 나아지려 애쓰며 살아갈 것이다. 갈망하지 않는 것이 무책임이나 무관심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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