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바다와 끝나지 않을 포옹
뜨거운 태양과 저렴한 물가, 지척에 바다를 갖춘 다합(Egypt, Dahab)은 전 세계 여행자와 다이버의 성지다. 이곳에 퐁당 빠진 사람들은 쉬이 홍해를 벗어나지 못한다. 바닷가엔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하고, 집은 달 단위로 렌트가 가능하다. 돈만 내면 비자도 뚝딱뚝딱 연장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곳엔 서둘러 떠나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나는 다합에 가기 위해 몇 년 전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왔는데 첫째로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여행자의 무덤'이라 불리는지 궁금했고, 둘째로 그리 좋은 묏자리라면 냉큼 파묻히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또한 스쿠버 다이빙은 남은 '해보고 싶은 것' 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사막 횡단, PCT, 번지점프 등이 남았다). 나는 수영을 못하고 딱히 물놀이도 즐기지 않지만 다이빙은 또 어떨지 모르니까- 확인해 둘 필요가 있었다. 해보고 난 후에 좋아할지, 좋아하지 않을지 정할 작정이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이집트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다이빙 하나뿐이었는데, 어쩌다 바닷가 생활에 홀딱 빠지는 바람에 정작 강습을 시작하기까지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다이빙을 시작하고 새삼스레 깨달은 것은 내가 몸 쓰는 일엔 젬병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물에서나 뭍에서나 몸을 못 가눴다. 꽉 끼는 슈트에 몸을 욱여넣고 나면 잘 가라앉기 위해 8kg쯤 되는 벨트를 동여맸다. 거기에 거대한 산소통과 장비까지 주렁주렁 메고 나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무릎이 절로 푹푹 꺾였다. 장비는 무거웠고 겨울 바다는 외마디 비명이 나오도록 찼다. 여느 바다보다 염도가 높은 홍해는 입을 바싹바싹 마르게 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느껴지는 압박감에 귀가 불편했고 차가운 물과 엉긴 몸은 매 초 천천히 굳어갔다. 몸은 비효율적으로 움직였고 때로는 뜻하는 대로 제어조차 할 수 없었다. 낯선 밀도의 세상에서 작은 흐름에도 당황해 허우적대면서 엉뚱하게도 '몸이 이렇게 살고 싶어 하는구나' 생각했다. 몸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두려워했고, 더 처절하게 살고 싶어 했다. 버둥대는 팔다리가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그런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과 안타까운 체력이 크나큰 걸림돌이었음에도 다이빙은 매번 흥미로웠다. 물 속은 놀랍도록 새로운 세계였고 그 놀라움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아서 사흘, 나흘이 지나도 물에만 들어가면 눈이 휘둥그레졌다. 낯선 밀도와 압력, 촉감과 온도에 정신마저 혼미했다. 레귤레이터를 입에 물고 고개를 물속에 박으면 즉시 호흡이 무의식의 영역을 빠져나오며 도드라졌다. 호스를 통해 꾹꾹 눌러 담긴 산소를 빨아들이고 밀어내는 일과 조금 버겁게 오르내리는 횡격막을 실감하는 일은 정말이지 황홀했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숨을 따라 시간마저 함께 팽창하고 수축하는 것 같았다. 들숨과 날숨이 만드는 소리가 온몸을 가득 채우면 어느새 나는 아주 다른 무게로 공간을 디뎠다. 느리게 다리를 저으면 몸이 물을 가르며 미끄러졌다. 그건 나아간다기보다 공간이 나를 스쳐가는 것에 가까웠다. 아주 부드럽고 유연하게 바다에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몸을 둘러싼 차고 미끈한 감촉, 한 가닥씩 빠져나와 눈 앞에서 물결치는 머리카락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좋았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압박 속에 그저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면서 오래도록, 어디라도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꼭 어디에 닿지 않는대도 좋았다. 그건 바다에 몸을 얹고 시간 위를 부유하는 사치스런 유희이자 낯선 압력에 포박당한 채 느끼는 새로운 종류의 자유였다.
그 모든 비현실적이고 망상적인 순간이 빠짐없이 즐거웠다. 낯선 색과 온도, 수면을 뚫는 곡선의 일렁임, 서먹한 팔다리의 움직임과 생소한 질감과 촉각의 세계. 그토록 정적인 태동 속에서 지상에서와 전혀 다른 존재의 감각과 무게를 느꼈다. 느리게, 느리게 숨 쉬는 나만 남은 기분이었다. 온몸의 말단까지 선명하게 존재하는 동시에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 호흡했다. 폐로부터 시작된 확장의 전율이 전신으로 퍼졌다. 유한한 무한이 되어 끝없이 흩어지는 중이었다. 모든 것을 끌어안는 동시에 포근하게 안겼다.
내 커다란 바다와 끝나지 않을 포옹-.
다이빙을 한 날은 대개 남은 하루를 통째로 자는데 썼다. 낯선 세계와의 조우가 그토록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던가, 혹은 그 꿈같은 감각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아서던가. 매번 휘청대는 나를 H는 종이 인간이라고 불렀다. 과연, 나는 종이 다이버였다. 그런 벅찬 경험을 자주 하기에 나는 너무 약했는지도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두 장의 자격증을 받고 나서는 닷새를 꼬박 쉬었다. 그 후로는 아주 띄엄띄엄 다이빙을 했다. 물속에서는 숨 쉬듯 살고 싶다고 자주 생각했다. 내일을 위한 공기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매 순간을 남김없이 살고 싶다고.
그건 거대한 돌산 앞에서 느꼈던 압도적인 경이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감각과 경험이었다. 다이빙을 배운 이후로 나는 바닷가에 가면 언제라도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물속을 유영하는 환상에 빠질 수 있게 됐다. 밀려오는 파도와 육각의 빛 그림자를 보며 천천히, 아주 큰 숨을 들이쉬면 묵직하고 부드럽게 나부끼는 물결이 느껴지고, 그대로 전율이 인다. 디딜 수 없는 것과 밀고 당기며 놀이하는 기분. 다른 종류의 힘과 질서, 새로운 구속이 주는 묘한 해방감. 상상 속에서 나는 아주 유연하고 부드럽다. 폐를 끝까지 늘려 공기를 삼키고 삼투하듯 천천히 흘려보내며 물속을 흘러 다니던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상상 속에서 나는 전혀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