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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Aug 10. 2021

혼자 있는 것과 혼자 떠나는 것

물풀처럼 여행하기

유월에는 여행을 다녀왔다.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서 늦기 전에  두어야지, 했는데 벌써 팔월이 되었고 지난 토요일 아침에 집을 나설  어쩐지 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입추라고 했다.

어쨌든 혼자 떠난 것은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사실 한국에  이후로는 처음이다. 서울에 올라온 뒤로는  바쁜 주말을 보냈고, 이틀은 어딘가로 떠나기엔 너무 짧게 느껴졌다. 여유가 있다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  달은 유난히 혼자인 것과 침묵을 견디기가 힘들었으므로 더욱 걱정이 되었다. 기우였다.




며칠을 지낸 곳은 사람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외진 곳이었다. 말소리는 없고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에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차를 마시고,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낯선 샴푸로 머리를 감고, 마루에 거꾸로 누워 머리카락을 말렸다. 오늘은 뭘 할까, 내일은 뭘 먹을까가 고민의 전부인 시간이 달가웠다. 나무나 개울, 풀꽃 따위를 세세히 들여다보며 산책을 하고 돌아와 책을 읽다 낮잠을 잤다. 맨얼굴에 닿는 바람이 시원했다.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 위로 개구리 울음소리와 새소리가 겹쳤다. 닫혀 있던 마음에도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밤에는 표면의 양감이 느껴지도록 달이 환했다. 조명이 없으면 무엇도 보이지 않는 밤이 도대체 얼마 만이더라. 까마득해서 기억도 나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떠도 새까만 어둠 속에서 눈을 깜빡, 깜빡이다가 아주 깊은 잠을 잤다.

사람도, 소음도, 할 일도 없는 그곳에서는 시간이 숫자가 아닌 것들로 흘렀다. 아침을 여는 새들의 작은 소란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잎들의 사각거림으로, 풀벌레 소리와 완연한 어둠으로. 째깍째깍 분절되지 않은 시간이 흐늘어져 덩어리로 흐르는 동안 늘어진 몸은 뼈까지 부드러워져 물풀처럼 흔들렸다.

, 이런 느낌이었지. 해야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 무엇도 급하지 않은, 계획 없는 하루가 온전히  앞에 펼쳐져 있다는 .’

그제야 깨달았다. 혼자 있는 것과 혼자 떠나는 것은 다르구나. 내겐 혼자 있는 시간만큼 혼자 떠나는 시간이 필요했구나.

버스 시간부터 시작해 뭐 하나 계획대로 된 것이 없었지만, 그 모든 어그러짐과 우연이 삶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만나는 모든 것이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익숙한 것이 주는 안전한 기쁨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원 없이 지루할 수 있어서, 혼자이기에 외롭지 않아서 좋았다. 내 앞에 펼쳐진 시간이 모두 내 것 같다가 시간의 흐름에서 아주 벗어난 것 같다가 이 모든 것과 하나가 된 것 같다가 내가 사라져 버린 것 같기도 했다. 이 충만함으로 또 다른 날들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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