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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Feb 08. 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이젠 내가 너를 웃게 해줄게


인도, 인도에 대해 말하려면 커다란 물음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자꾸만 그리운 곳이라니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 일까. 늘 생각나고, 가끔 사무치게 그립고, 이따금은 울컥울컥 눈물이 날만큼 보고 싶은 곳.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뻐근한 나라. 세 번째 인도 행을 결심하면서 생각 했다. 이것은 역시 ‘식욕’과 같은 형태의 욕망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오늘 먹었다고 내일 굶지 않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돋게 되는 것. 너무도 당연한 것. 내겐 매 끼니면 찾아오는 허기나 돌아서면 찾아오는 그리움이나 같은 맥락의 것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한정되는 범위에서 인도를 이렇게 정의해보면 어떨까.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신체 혹은 정신이 스스로 필요로 하는 것’, 혹은 ‘살아가기 위해 찾아야 하는 곳’.



평생 오지 않을 수 있다. 한 번 온 후에 다시 찾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다. 평생 잊지 못하게 될 테다. 언제 찾게 될 것이다. 그런 곳이다, 인도는.





India, Varanasi (2016)





그러니까, 가장 곤란한 질문은 이런 종류의 것.


인도의 어떤 점이 가장 좋아요?


단번에 그냥요, 하기엔 성의가 없는 것 같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러나 곧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글쎄요, 그냥요, 그냥요.


가장 크고 복잡한 마음은 늘 ‘그냥’이라는 단어에 담긴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 어떤 단어보다도 크고 넓고 관대한 단어 ‘그냥’. ‘그냥’이 없었더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이 마음을 어찌 말해야 했을까 싶어 몇 번이고 아득하다. 그냥. 이 복잡한 마음에 가장 가까운 말.

 









내가 사랑한 인도는 여전히 시시때때로 전기가 끊기며 24시간이라던 핫 샤워는 3분을 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태이다. 좁은 거리는 시끄럽고 번잡하며 먼지가 많아 금세 목이 껄끄럽고 손톱 밑이 새까매진다. 비가 오면 하수도가 끓어 넘치고 새벽녘이면 벌건 눈을 한 개들이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사나운 원숭이는 머리 위를 뛰어다니며 일용할 식량의 안위를 위협하고, 야채 시장을 지날 땐 거대한 소뿔에 받히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한다니 그립다니. 얼마나 큰 마음인가-. 결국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안고 있다. 나의 인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한다. 감수해야 하는 수많은 불편에도 불구하고 이 곳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그러니 어떤 점이 가장 좋으냐고 물어온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스러운 점이 라고, 그렇게 답해도 되지 않을까.





India, Varanasi (2015)





여느 날과 다름없이 가뜨(Guat)에 앉아 책을 읽는 중이었다. 별안간 단발머리 소녀가 나타나 불쑥 꽃을 내밀었다. 노랗고 작은 꽃잎들이 작은 손에 가득. 얼른 받으라는 듯 빤한 눈을 마주하다 웃음이 났다. 그 애는 어리둥절한 내 손에 갠지스의 것이 분명한 소라껍데기까지 흘러넘치도록 넘겨주었다. 고작 이름 두 자를 알려주고선 ‘나마스테’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 사라진 아이. 어떠한 말이나 이유도 필요하지 않다. 설명되지 않거나 납득할 수 없어도 괜찮다. 언제나 이런 종류의 놀라움이 존재했고 그거면 충분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기쁨이 언제고 생기는 곳, 나의 인도는 그런 곳이었다.



아침이면 매일 같이 가는 카페가 있다. 언젠가부터 따로 주문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차를 내어 줄 만큼 꼬박꼬박 드나들었다. 늘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기다란 나무 의자가 놓인 실내엔  앉을 수 있는 사람에 비해 테이블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 날도 자리가 없어 테이블 없는 의자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곧 짜이(Chai Tea)가 나왔다. 뜨거운 컵을 놓을 곳이 없어 두리번거렸더니 금세 알아채곤 일어나 자리를 비켜준다. 앉으란다. 괜찮아요, 는 당연히 소용도 없다. 내가 옮겨가기를 바라는 눈이 많으니 움직이긴 해야겠는데, 무릎에 올려둔 책이며 가방이며 핸드폰 때문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어쩔  몰라했더니 얼른 와 컵을 들어준다. 고맙다는 말에 별 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까딱 한다. 어느 때라도 나의 사소한 곤란을 외면하지 않는 곳, 나의 인도는 그런 곳이었다.



야채 시장의 에그롤 코너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술인지 약인지 둘 다인지에 취해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하이파이브를 하자는 걸 거절했더니 마음이 상했던가 보았다. 그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쁘다는 듯 단호히 고개를 돌리곤 끊임없이 나를 겨 날이 선 이야기들을 주절거렸다. 잠자코 듣고 있던 내 쪽에서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일어서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부글부글 속 끓이는 새 그는 떠났다. 그러나 이미 나빠진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화를 가라앉히느라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물어온다. 왜 슬픈 얼굴을 하고 있냐고. '슬픈 게 아냐. 조금 화가 나서 그래.' 답하니 술과 약에 취한 멍청이니 신경 쓰지 말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굳은 표정이 여전했던가 보다.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자꾸 말을 걸어왔다. 끈질기게 시답잖은 농담을 건넨다. 결국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만다. 그제야 만족한 표정이다. 늘 이렇다. 슬픈 얼굴을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 생각에라도 빠져 걸을라치면 무슨 일 있냐고 누구라도 빠짐없이 물어보는 곳. 완벽한 타인이자 이방인인 나를 보듬어 다시 웃게 해주는 곳, 나의 인도는 그런 곳이었다.



















나의 모든 프라블럼을 노 프라블럼으로 만든 인도는 나의 첫 여행지였다. 인도에 푹 빠져있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말했다.


‘다른데 안 가봐서 그래’


그 말에 대한 오기로 다음 행선지였던 아프리카를 포기하고 유럽행을 선택했다. 두 번째 달의 끝 무렵, 이탈리아 남부의 소도시 바리에 도착했을 때였다. 낯선 도시의 해가 지기 시작했고, 하나뿐인 숙소에는 방이 없었다. 잔뜩 지친 나는 믿어도 될지 결정하지도 못한 남자의 친척이 소유한 게스트 룸을 빌리기 위해 하염없이 노천카페에 앉 있는 중이었다. 가방을 제대로  내려놓지도 않은 채 주변을 살피는 나를 보며 그가 말했다. ‘무엇을 두려워하니?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노 프라블럼’.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눈물이 핑 돌았다. 먼 산을 바라보며 울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인도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그 날에야 깨달았다. 그날 밤 고요한 방안에서 소리도 죽이지 않고 오래도록 엉엉 울었다. 내가 사랑했던, 그리워했던 인도가 단 한마디 말에서 터져나왔기 때문.


나의 인도는 노 프라블럼의 나라였다. 무엇을 해도 괜찮다고 말해준 첫 번째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내게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했고 삶을 즐기라 했다.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말해주었다. 행복이라는 감정을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서 선물했다.



인도는 나에게 그 어떤 거창한 철학도 죽음도 모험도 아니었다. 다만 행복했던 시간. 강산이 반은 변했을 세월 동안 인도의 표정은 확연히 어두워졌다. 이젠 길바닥에 이름 없는 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웃는 얼굴을 찾을 수 없다. 가끔 낯설고 또 무섭다.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위태롭고 간절했던 바람은 스러졌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변화는 너무도 분명했다. 내가 사랑했던 인도의 모습이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 확인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처음 몇 주 동안은 변해버린 모습을 보며 ‘다시 찾게 될까’ 고민도 했다. 바보 같은 고민이었다. 나는 인도를 다시 찾는 일을, 여행하는 일을 결코 그만 두지 못할 것이었다. 그다음 몇 주 동안 그것만이 점점 분명다. 어느 때보다도 긴 시간을 머물며 천천히 뿌리를 내렸다. 이전에 보던 것과는 다른 시각으로 인도의 면면을 뜯어보았다. 더 깊이 스며들려 노력했다. 그리하여 변함없이 그리워하게 되었다. 지난 시간동안 만난 인도의 전부를 사랑한다. 언제고 다시 찾게 될 거다.


나의 집, 나의 고향, 나의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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