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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Nov 13. 2015

웃지 마세요

이상한 조언


왜 웃어요? 웃지 마세요.



의사가 말했다. 조언이라기보단 권유, 권유보다는 명령에 가까운 어투였다. 늘 웃고 있는 내 얼굴에서 괴리감을 느꼈단다. 그가 짚은 맥은 긴장과 스트레스로 엉망이었으므로.


아니, 이렇게 아픈데 왜 웃고 있어요?

...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모른다. 웃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를 마주 할 때 웃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습관이었다. 아니, 어쩌면 자율 신경계의 연동운동과 같은 자연 현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은 아픈 줄도 몰랐다.



거절을 잘 못하죠?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 불편한가요?
원하는 바를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편이죠?



애석하게도 이어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조리 YES 였다.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바라보던 그는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을  추천해 주었다.


누가  선물해주더라고.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남을 위해 웃지 말고, 본인을 위해 화내고 울어요. 남들은 좋겠죠. 답답해도 웃어주고 싫어도 참으니까. 그러니까 혼자 스트레스 받잖아. 아프죠? 자, 그럼 이제 나한테 화내는 걸로 시작해봅시다.


그는 한동안 내가 화를 내기를 기다리는  듯했으나 나는 끝내 그러지 못했다. '선생님께 화낼 일은 없는 걸요.' 어깨를 으쓱했고 그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흔들었다.





NEPAL, POKHARA (2013)




밥 먹듯이 끼니를 거른 세월을 질타라도 하듯 한 순간 무너진 몸에 팔자에도 없던 한의원 다니는 중이었다. 쥐꼬리보다 적었던 월급에서 꼬박 꼬박 빠지는 병원비를 보며 내내 툴툴거렸어도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가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식사는 잘 하셨어요?

스트레스는 많이 받지 않으셨구요?

잠은 잘 주무셨나요?

하시는 일은 좀 어떠세요?

운동은 하고 계신가요?


세세하게 쏟아지는 관심 때문이었으리라.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어 보이면서 나름 고단했던 지난 일주일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 시간들은 확실히 아픈 몸 만큼 팍팍한 마음에도 훌륭한 치유였다.


이 얘기를 전했더니 친구가 그러더라.


외로웠구나?










아닌 척, 쿨한 척 혼자 다하면서 끊임없이 사랑과 관심을  갈구했다. 구멍 뚫린 독, 해소되지 않는 갈증처럼 욕구는 줄어들지 않았고 해를  거듭할수록 강렬해지고 또 간절해졌다. 어딘가에 무언가에 혹은 누군가에 사랑을 쏟으면서 돌려받고 싶어 안달했다. 어쩌면 그래서 늘 외로웠던 것 같다.




두어 달 뒤엔 필라테스 강사가 그와 비슷한 말을 하더라.


아프지 않아요?

아파요.

그런데 왜 웃어요?

...

아파도 웃고, 힘들어도 웃고 그러지 마요. 사람들이 바본 줄 알아.



나는 바보다. 바보, 멍청이, 해삼, 말미잘. 이런 말 까지 듣고 나니 이젠 정말로 헤실 헤실 웃기가 좀 그렇다. 시도 때도 없이 웃어재끼는 나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하게 되었지만, 그래서 웃지 않게 되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누구 말만 따르면 '경박하게' 혹은 '해맑게', '생각 없이' '바보같이' '멍청하게'. 어쨌든 요즘도 아프든 힘들든 덥든 뭐든 웃고 자빠졌다. 다만, 지금은 정말로 괜찮다. 일단은 그걸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타닥타닥, 굵은 빗방울 두 눈을 적시면

뜨거운 입김처럼 짙은 향기가.


젖은 골목이 손 끝에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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