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지난 여행에서 돌아온 후부터 계속 배낭을 채워오고 있었다. 필요할 만한 물건이 눈에 띄면 쪼르르- 알밤 모으는 다람쥐 마냥. 언제, 어디로 떠나게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언젠가 떠나리라는 것만은 확신하고 있었다.
배낭을 쌀 때 가장 주의해야 할 단어라면 '혹시'나 '만약'이 될 것 같다. 두 단어를 고려하기 시작하면 짐이 굉장한 속도로 늘어난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대비해두면 좋긴하지만 모든 상황을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챙겨야 할 품목이 많아지는 것은 배낭을 짊어져야 하는 입장에서도 탐탁지 않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던가. 뻔히 알고 있어도 미련한 미련을 버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이번에도 자질구레한 것들을 잔뜩 집어넣어버렸다. 그래도 10kg가 채 안되니 이 정도면 가뿐하다. 심지어 배낭 속에는 침낭과 헤어드라이어까지 들어갔다. 챙길 건 다 챙기고, 안 챙겨야 할 것도 제법 들어갔는데.
무엇의 빈자리일까?
도착하고 또 며칠을 지낸 후에야 빠뜨린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떠하랴.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빈자리와 함께 지내야지. 늘 함께 했기에 '여행=배낭'이라는 느낌을 주는 완벽하지 않은 배낭과. 때로 나는 네게 기대어 잠들고, 너는 내게 업힐 것이다. 네가 나의 업보고 짐이면 어떠냐. 집 떠나 있는 동안 내 곁을 지킬 것은 너 하나뿐일 텐데. 배낭은 언젠가부터 동지랄까-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름이라도 붙여줘야 할 것 같은데 너무 신중한 나머지 여태 결정을 못했다.
이번에 배낭을 꾸리며 가장 고민한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데미안을 진작 챙기기로 결정했고, 함께 주문한 시집과 소설 한 권도 넣었다. 함께 여행을 하는 책은 대개 처음 읽는 책이 아니다. 여러 번을 읽었어도 또다시 펼치고 싶은, 그런 책과 동행한다. 홀로 하는 여행에 익숙해져 내가 내 안에 갇힐 때, 가져간 책들이 도움을 준다. 많지 않은 경험으로 미루어보았을 때도 여행 중에 필요한 것은 가이드북이 아니라 다른 관점과 문제를 제기하는 좋은 책인 경우가 많다. 세 권의 책을 밀어 넣고도 이쯤이면 충분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머리맡에는 읽다 만 책들이 숙제처럼 펼쳐져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짐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책이든 옷이든 과한건 좋지 않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지퍼를 잠그었다. 얼마나 많은 물건을 채워 넣든 허전한 마음이 채워지는 일은 없다. 소중한 것들은 손에 잡히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므로 배낭에는 필요한 것을 챙긴다. 약간의 욕심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