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이란 놈은 어딜 가나 비슷비슷하게 닮았다.
오래된 기차역의 정겨움이나 버스 터미널의 부산스러움은 없고
차갑게 번쩍거리는 바닥과 면세점의 불빛, 프리페이드 택시가 즐비한 모양 때문에 값비싼 도시의 축약판 같다. 인간적이라기보단 물질적인 공간. 소비를 부추기는 느낌이 강하다. 가장 가까운 과거에 시작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곳이니 역시 옛날보다는 지금을 닮았다.
표지판을 따라가 공항철도를 탔다. 시야에 들어온 방콕은 생각보다도 훨씬 도시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태국'이라는 이름에서 무엇을 상상했던 것일까. 피식 웃음이 났다. 머리 속에 멋대로 상상했던 방콕을 비워내고 창 밖의 방콕을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열차가 서고 문이 열릴 때마다 와르르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한 뼘짜리 핫팬츠부터 두툼한 가디건까지, 옷차림도 제각각이다. 번쩍번쩍 높은 빌딩과 쏟아지는 사람들을 번갈아 흘끔 대다가 까무룩 졸기도 했다.
태국의 택시는 뭔가 다를까? 영어를 써도 될까?
소심하게 손을 들어봤지만 택시는 자꾸만 앞을 스쳐 지났다. 투명인간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뭐 다른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 건가 고민하는데 오토바이 택시 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피곤하던 참이었다. 그를 따라나섰다.
나는 오토바이를 좋아한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속도감과 차갑게 부딪히는 바람이 좋다. 창 없이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더 가깝게도 느껴진다.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만나는 태국은 즐거웠다. 도로에는 차며 사람이 바글바글했고 그중에서도 오토바이가 특히나 득실거렸다. 빨간불이면 슬그머니 정지선 앞으로 모여들었다가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출발하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군단 같다. 무거운 배낭 때문에 엑셀을 당길 때마다 몸이 뒤로 치우쳤다. 옷자락을 꽈악 거머쥐어야 했다. 머리카락이 마구 날려 시야를 가렸다. 뜨거운 햇살과 바람, 도시의 소음이 그대로 내게 닿았다. 아아, 방콕인가.
숙소에 도착해 씻고 나오니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이 함께 마사지를 받으러 가려는지 물어온다. 마사지는 생각도 없었는데 태국에 왔기도 하고, 현지인들도 다니는 마사지 샵이라고 하기에 냉큼 따라나섰다. 음식점도 놀거리도,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면 괜히 궁금해진다. 관광 필수코스라고 하면 거부감이 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려나.
대학을 지나 불교 용품이 가득한 골목 근처에 위치한 마사지 샵에 닿았다. 2층으로 올라가니 바닥에 가죽 매트리스가 쭈욱- 펼쳐져있다. 안쪽에 위치한 방에서도 가장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마사지는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나보다 10년은 족히 더 살았을 여인의 손에 나를 맡기고 누워 있는 일은 마음 편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손이 서늘했던 것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차고 가녀린 손에 몸을 맡겨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눈을 굴려 주변을 훑어보거나,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쑥스러움과 미안한 마음을 담아 배시시 웃어보이는 일뿐이었다. 짙은 갈색의 바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옅은 연두색의 벽. 에어컨을 통해 나오는 바람이 소리가 되어 웅웅- 울렸고 창밖을 지나는 차의 엔진 소리도 슬그머니 방으로 흘러들어왔다. 조곤조곤 내 위를 오간 마사지사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엔 이상한 주파수가 있는 게 분명했다. 불편한 마음에도 졸음이 오기 시작했으니까. 자꾸만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손이 찬 그녀와 나와 그녀의 동료는 많이 웃었지만 다시 마사지를 받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나이 든 여인은 엄마를 떠올리게 했고, 어쩌면 그것이 불편했는지도 모르겠다.
고작 반나절만에 방콕을 비추는 태양에 혀를 내둘렀다. 햇빛에 닳은 살갗이 화끈거렸다.
중국부터 싱가포르까지를 자전거로 일주했다는 남자와 여행의 골을 가늠할 수 조차 없는 아빠 뻘 남자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으려 애쓰면서 덥다, 덥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J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