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이다.
자리에 없던 J가 불쑥, 분장을 한 채 돌아왔다.
치사하게 그런 걸 혼자 하고 오느냐고 누군가 투덜댔고,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에 결국은 모두 다 하기로 했다.
결과는 판다였다. 하하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카오산은 들썩이고 있었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피곤해서 드러눕고 싶을 뿐이었는데 축제 분위기를 마주하자 곧 마음이 동했다. 이미 옴짝달싹 할 수 없을 지경으로 사람이 많았다. 인파를 헤쳐보려 했지만 일보 전진도 불가했다. 한동안 서성이다 이동을 포기하고 노점에서 맥주 한 병씩을 사들었다.
흥에 겨운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재미있다. 모두가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으로 연결된 거대한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즐거움은 아마 전염이 되는 감정이라지. 나는 아주 강력한 즐거움에 전염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알코올도 한몫을 했겠다.
음악과 술과 흥겨운 인간들로 들썩이던 카오산이 끓어 넘쳤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발이 제법 굵었다.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이 우수수 흩어졌다. 순식간에 거리가 텅 비었다. 근처의 가게 안으로, 지붕 밑으로. 일행도 뿔뿔이 나뉘었다.
사람들이 사라진 거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비를 맞던 그 순간의 감정을 설명하라면 '환희'. 고개를 들어 곧게 쏟아지는 비를 듬뿍 맞아들였다. 분장이 흘러내려 눈이 따가웠지만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후끈하다 못해 화끈한 밤 열기에 지쳐가던 참이었다. 시원한 비는 달다 못해 온 몸을 녹일 것만 같았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할로윈, 카오산, 그리고 비라니.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은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는 기억마저 희미하다.
후드득 쏟아지는 빗속에서 더 없는 자유를 느꼈다.
쫄딱 젖어서도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공기가 구석구석 몸을 채우는 것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가벼웠다.
충분히 빠르기만 했다면 빗줄기를 거슬러 날아오를 수도 있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