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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by 잉지


할로윈이다.


자리에 없던 J가 불쑥, 분장을 한 채 돌아왔다.

치사하게 그런 걸 혼자 하고 오느냐고 누군가 투덜댔고,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에 결국은 모두 다 하기로 했다.


결과는 판다였다. 하하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카오산은 들썩이고 있었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피곤해서 드러눕고 싶을 뿐이었는데 축제 분위기를 마주하자 곧 마음이 동했다. 이미 옴짝달싹 할 수 없을 지경으로 사람이 많았다. 인파를 헤쳐보려 했지만 일보 전진도 불가했다. 한동안 서성이다 이동을 포기하고 노점에서 맥주 한 병씩을 사들었다.


흥에 겨운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재미있다. 모두가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으로 연결된 거대한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즐거움은 아마 전염이 되는 감정이라지. 나는 아주 강력한 즐거움에 전염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알코올도 한몫을 했겠다.





BKK, Thailand(2015)



음악과 술과 흥겨운 인간들로 들썩이던 카오산이 끓어 넘쳤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발이 제법 굵었다.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이 우수수 흩어졌다. 순식간에 거리가 텅 비었다. 근처의 가게 안으로, 지붕 밑으로. 일행도 뿔뿔이 나뉘었다.


사람들이 사라진 거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비를 맞던 그 순간의 감정을 설명하라면 '환희'. 고개를 들어 곧게 쏟아지는 비를 듬뿍 맞아들였다. 분장이 흘러내려 눈이 따가웠지만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후끈하다 못해 화끈한 밤 열기에 지쳐가던 참이었다. 시원한 비는 달다 못해 온 몸을 녹일 것만 같았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할로윈, 카오산, 그리고 비라니.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은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는 기억마저 희미하다.

후드득 쏟아지는 빗속에서 더 없는 자유를 느꼈다.



쫄딱 젖어서도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공기가 구석구석 몸을 채우는 것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가벼웠다.

충분히 빠르기만 했다면 빗줄기를 거슬러 날아오를 수도 있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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