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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Mar 05. 2016

'나'를 헤는 밤


이른 새벽 잠에서 깨는 이유는 대부분 하얀 글자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맡에서 '사람들은 가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행하기를 강요받는다.'라는, 이제는 어떤 맥락이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는 메모를 읽었다. 엊그제는 '개인의 영역은 어디까지 존중받아야 하는가.', 그 전날에는 '한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고 도전하기에 인간은 대견하다.' 하는 메모를 남겨두었더라.










늦은 시간, 잠에 빠져 허우적 대면서 나는 무슨 생각들을 하는 것일까.


어젯밤 꿈에는 깊은 허공 속에서 글자가 솟았다가, 이내 사라졌다. 분명히 읽었는데 잠깐 사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꿈과 현실의 경계 어디쯤에서 사라진 글자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 비슷하지만 다른 글자들이 솟았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한참이나 사경을 헤매듯 허공을 헤매었지만 끝내 처음의 문장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면도 기억하고 싶어서 찾지는 못했,라고 쓰듯 되새겼다가 아득한 꿈결에 금세 썼던 문장을 잃고, 

아쉬워하며 잃어버렸다,라고 썼다가 또 깜빡 잃어버렸다. 잠은 자꾸만 나의 글자들을 지운다. 흔적도 없이.


그렇게 한참이나 자는 것도, 깬 것도 아닌 상태에서 아등바등했다. 그러다 단념하고 눈을 떴더니 쏴아아- 하고 뜰채에 물 빠지듯 밤새 아로새긴 글자들이 말끔히 빠져나가버렸다. 꿈속에서 본 문장은 번뜩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꿈의 경계로 기어나올 만큼 마음에 드는 것들이었다. (그 사실만이 기억난다니 아이러니하다.) 그런 문장들을 매일 잃어버리고 있다니 조금 억울해졌다.










지난밤의 허공은 꿈이라기보단 무의식에 가까웠던 것 같다.


매일 밤 스스로의 무의식을 헤매며 나를 찾는 '나'.

이상한가? 이상해, 이상해.


실수는 '운'이라기보다도 실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내가 첫 번째 문장을 찾지 못하는 이유도 스스로 확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더 깊어지면, 확고해지면 그 문장들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그저 잃어버린 것을 향해 더 치열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요즘은 일기를 쓴다.

이 이상한 이야기를 쓰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뭔가를 쓰는 일은 의미가 있을까?

까맣게 적어나가는 작은 글자들은 부끄러운 과거, 얕은 생각, 의미 없는 사건, 숨겨야 할 비밀, 왜곡된 기억 외에 또 무엇이 될까.


갑자기 나는 스스로의 업보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들었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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