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는 길다.
운동화를 빨고 책을 읽고 밀린 일기도 썼지만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가실 줄 모르는 더위에 의욕마저 사그라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몸에서 땀이 배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파쑤멘(Par Sumen)에 가보았지만 달려드는 모기떼에 쫓기듯 돌아와야 했다.
다시 지루했다. 지루하고 외로웠다.
풀썩 쓰러져서 몇 번이고 '지루하다. 외롭다'하고 되뇌다가 문득 지루하고 외롭다는 사실이 좋아졌다. 나는 누구를 만나게 될지, 무엇을 하게 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불명확성에 나를 내던졌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고독에 스스로를 팽개쳤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의지였다. 그러므로 나쁘지 않은 시작이라 생각했다.
자,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부터 시작하자.
내일은 월요일이니 어딘가로 출발해야겠다.
태국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으니 어려울 수도 있겠다.
딱히 마음에 두었던 곳이 아니니 어려운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길을 나서면 어딘가로 향하게 되겠지.
걸음 끝에 닿을 곳이 어딘지 모를지라도.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가 정말로 여행을 좋아하는 종류의 인간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이것은 진정 도피가 아닌가.
일상에서 성실했던 나를 기만하는 것은 아닌가.
따뜻하고 기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어째서 이렇게 힘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