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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Mar 09. 2016

10.


자꾸 졸음이 쏟아졌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모기처럼 쉬이 쫓아지지 않는 잠의 무게에 온종일 넋이 빠졌다. 무언가 하기엔 과하고 잠들기엔 부족한, 그런 정도의 노곤함. 무거운 눈꺼풀에 눌려 그저 한숨처럼 잠들고 싶었다.


바람과는 달리 자정을 넘겨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불을 끄자 에어컨이 내뿜는 높고 잔잔한 소리가 어둠을 맴돌았다. 언제고 빈자리는 채워진다. 빛이 사라진 자리는 달이 채우기도 하고, 소리가 채우기도 하고, 바람이 채우기도 했다. 빈자리는 그대로 비어있는 일이 드물다. 귀를 기울이고 감각을 곤두세우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비어버린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질까?

다음번엔 주의 깊게 살펴봐야지.










숙소에서 만난 첫 일행들은 나이와 지역을 물었을 뿐,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우리 사이엔 알 수 없는 벽이 있었다. 높고 단단한 벽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나는 조금씩 작아졌다.


이제 사람을 만나는 일마저 못하는 인간이 되었나, 하자가 많구나.





*10. 생략된 이야기: 참을 수 없는 가벼움


BKK, Thailand (2015)



어쨌든 지난밤의 다짐대로 길을 나섰다. 고작 집 앞에 나왔을 뿐인데 혼자인 방콕은 새삼스럽도록 새로웠다. 그런 장면들을 또 '낯설지 않다'고 느끼면서 의문이 들었다.


왜 낯설어야 할 것을 낯설지 않다고 느끼는 것일까.

온갖 매체들로 세계를 접해 온 탓일까, 혹은 무딘 마음과 눈 때문일까.













낯설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던 중에 엉뚱하게도 네가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낯선 환경에 내던져지는 일 보다도 낯선 '너'를 만나는 일을 더 무서워했던 것 같다. 하나의 우주라는 한 사람을 안다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얼마나 큰 자만인가. 알면서도 나는 두려워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너를 아는 일은 큰 기쁨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이기도 했다.


데미안의 첫 장엔 그런 말이 있더라.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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